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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원의 이코노믹스

‘영끌’해 주식 사고 부동산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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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 시작인가? 끝인가?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돈값이 헐값인 시대가 왔다.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지난해 12월 1.6%에서 올해 11월 0.8%로 낮아졌다. 1억원을 예금하면 1년 만기 세후이자는 132만원에서 70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로 평가한 돈의 일반적 실질 구매력은 변화가 없다.

급격한 자산 인플레이션 현실화 #이자보다 주식·부동산 수익 커 #돈은 구매력 급격히 떨어질 우려 #그래도 자산에 올인하는 건 위험

반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0.5%, 주가(KOSPI)는 3.2%, 금값은 21.3% 올랐다. 즉 우리 경제에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금·아파트 등 주요 핵심자산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자산 가격의 상승 폭이 작년보다 올해 들어 크게 확대됐다. 유동성 증가에 비해 오히려 국내 주가 상승은 아직 낮은 편이다.

이같이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는 현상을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산 인플레이션 현상은 현금을 포함한 여러 자산의 상대가격 체계가 균형을 이탈할 때 발생한다. 손에 얼음을 쥐고 있으면 저절로 녹듯이,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현금과 예금의 다른 자산에 대한 상대가치가 현저하게 하락한다. 세칭 ‘영끌’을 해서라도 주식을 사고, 아파트를 사는 작금의 세태는 그만한 경제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돈값이 헐값’인 현상은 얼마나 지속할 것인가? 코로나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자산 인플레이션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 미국의 경험을 살펴보면, 2009년 1월 대비 2020년 10월까지 달러의 구매력은 소비자물가 기준으로 4분의 1이 감소한 반면에 다우지수는 4.6배, 나스닥 지수는 9배, 특히 아마존의 주가는 43배 상승했다. 지난 10여년 미국의 경험은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자산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로나 충격이 자산가격 상승 촉진

Hand picking golden house, real estate investment and buying house concept [Shutterstock]

Hand picking golden house, real estate investment and buying house concept [Shutterstock]

현재 돈값이 떨어지는 현상은 물가상승보다는 저금리가 주된 원인이다. 이 같은 저금리는 한국은행의 통화공급 증대와 시중의 자금 수요 부진에 따른 결과다. 현금성 통화지표(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M1과 MMF 포함)의 합계액은 작년 9월 대비 1년간 223조원이 증가했다. 전년 같은 달 대비 증가율은 작년 9월 5%에서 올해 9월 무려 25%로 상승했다. 반면에 예금은행 요구불예금의 월 회전율은 별 변동이 없다. 즉 유동성은 급증하고 있으나 금융시장에 고여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유동성이 사실상 마이너스 실질금리와 다른 가치저장 자산에 대한 상대가격 하락을 감수하면서 금융시장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흐르면 자금 수요의 증대와 경제 활성화로 금융과 실물 경제 간의 선순환이 작동할 것이다. 반면에 자금이 불투명한 경제 전망으로 인해 소비와 투자로 흐르지 않고 주식·부동산·금 등 자산으로 흘러가면 전반적인 물가안정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격이 뛰는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미 증권시장은 2월 고점에 대비해 11월 중순에 접어들어 나스닥 지수는 22%, S&P500은 7% 상승해 코로나 충격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의 괴리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연방준비제도(Fed)의 적극적 통화 공급과 저금리 정책, 그리고 정보통신 산업의 주도에 의한 증권시장의 구조 변화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Fed의 총자산은 2월 말에 대비해 6월 초까지 불과 3개월간 거의 70% 증가했다. 더구나 Fed는 9월 20일 인플레이션율이 2%에 도달할 때까지 현재의 저금리 기조를 지속한다는 통화정책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시장에 앞으로 최소한 3년은 현재 0%에 가까운 정책금리가 지속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의 상승으로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저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은 다른 자산의 상대가격을 부추기는 작용을 한다.

한편 미 증권시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 산업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급격하게 정보통신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S&P500 지수의 시가 총액에서 정보통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30%에서 최근 40%에 근접하고 있다. S&P500 지수는 2월 고점 대비 7% 상승했으나, 정보통신산업 지수는 20% 상승했다. 특히 아마존은 45%, 애플은 48% 올랐다. 이같이 미국의 경우 코로나 충격이 자산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침체로 Fed의 저금리 기조 장기화가 불가피한 만큼 현재의 자산 인플레이션 양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누적된 거품 터지면 자본시장 위기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인한 3월 단기 급락국면을 제외하면 미 주식시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충격 이후 2009년 2월 말 저점으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11년 9개월간의 장기 상승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이 기간 S&P500 지수 편입 종목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3에서 40으로 상승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로 산출되는 ‘버핏 지표’는 203%로 역사적 평균치보다 무려 65%나 높아 2000년 닷컴 버블 때의 71%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의 자산 인플레이션

미국의 자산 인플레이션

세계 금융위기 대책이 초래한 주식시장 거품은 코로나19로 더욱 팽창하고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은 올겨울 3차 대유행이 심각할 경우, 세계 경제는 2023년까지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미국 주식시장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을 맞을 근거와 가능성은 적지 않다. 한편 Fed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과 저금리 정책이 투자자들의 위험자산 선호를 촉진하고, 그 결과 좀비기업의 차입 증대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좀비기업이 회사채 상환 불능 사태에 빠질 경우, 고위험 회사채시장에 투자 비중이 높은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부실화가 발생할 위험이 증대한다. 나아가 연쇄적으로 보험회사와 연기금 등의 부실화가 유발됨으로써 세계 자본시장의 위기로 퍼질 위험이 있다.

이같이 서로 방향이 다른 자산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이 함께 힘을 키워가고 있어 갈수록 불확실성이 증폭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 가능성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위기 대책으로 살포된 과잉 유동성은 실물경제의 장기침체로 인해 자산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금융시장의 왜곡으로 또 다른 위기의 위험을 키운다. 정리해 보면 미국의 경우는 단기적으로는 금융위기의 위험이 크고, 장기적으로는 자산 인플레이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자산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한 반면에 장기적으로는 금융 위험이 증대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자산 중에서도 가치의 집중과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어 2020년대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여 년보다 자산구성의 선택이 어렵고, 결과의 차이가 더 치명적인 시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자산 선택이 향후 10년의 부(富)를 좌우한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선택의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 대응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타당한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는 지침은 있다. 각자 갈 길은 달라도 나침판은 누구에게나 유용하다.

현금의 속성은 유동성이므로 위험을 회피하는 최선의 안전자산이지만 자산 인플레이션 시대에서는 마치 녹아 없어지는 얼음덩이처럼 보유의 기회비용이 높은 위험자산이기도 하다. 즉 양날의 칼이 시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주의해야 할 사실은 과잉 유동성이 자산 인플레이션의 공통적 요소이나 자산마다 가격 결정요인이 다르고, 자산시장 내부적으로 집중화와 양극화 양상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응의 신축성이다. 상황 전개에 대응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그야말로 이판사판 게임이 되어 합리적 판단은 더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불확실한 미래의 전개에 대응하는 신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축성은 정서와 재무 양면에서 모두 필요하다.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향과 위험 감당 능력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 최선의 해답이 있을 수 없다. 그다음으로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될 경우에 대비한 ‘플랜 B’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현재의 자산 선택이 향후 10년의 부(富)를 좌우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