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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文에 개혁안 별도 보고했다"...尹찍어내기 1년6개월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이명박 정부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전직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은 비열한 정치 수사다!’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때로는 수사를 아예 전면 거부한다든지 맞대응을 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회한이 있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사망의 충격이 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문 대통령의 회한은 ‘검찰개혁’의 원동력이 됐다.

BH리포트

집권한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의 마무리를 맡긴 이가 바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두 사람은 대통령에게 ‘아픈 손가락’일 만큼 신뢰를 줬던 인사”라며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석열 총장의 대통령 ‘별도 보고’

실제로 문 대통령은 얼만큼 윤 총장을 신뢰했던 걸까. 여권의 핵심 인사는 11일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 총장이 최소 두 차례 문 대통령에게 검찰의 독자적 개혁방안을 별도 보고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1월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선 9월 30일 윤 총장을 겨냥해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라"는 '공개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1월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선 9월 30일 윤 총장을 겨냥해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라"는 '공개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통령과 현직 검찰총장 간의 별도 논의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인사는 다만 “대통령에게 별도 보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면으로 했는지 여부 등 정확한 방식이나 시점, 그리고 보고된 개혁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검찰 개혁안이 순차적으로 청와대에 전달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고 방식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함구했다.

다만 당시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0일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와 검찰은 함께 검찰 개혁의 주체이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대폭 강화된 반면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 관행,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고도 했다.

당시는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던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공개 지시’를 하기 3일 전에도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와 관련 “검찰이 아무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여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데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검찰은 성찰해 달라”고 말했다.

◇‘지시’ 직후 쏟아진 자체 개혁안과 ‘개전(開戰)’

문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바로 다음날인 10월 1일부터 대검찰청은 자체 개혁안을 쏟아냈다. 내용은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다보며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다보며 발언하고 있다.

△1차(10월1일) 3개청 외 특수부 폐지ㆍ파견검사 복귀ㆍ검사장 전용차량 중단 △2차(10월4일) 공개소환 폐지 △3차(10월7일) 심야조사 폐지 △4차(10월10일) 절제된 검찰권 행사 △5차(10월16일) 대검 인권위 설치 △6차(10월24일) 감찰 강화 △7차(10월29일) 변론권 강화 △8차(11월27일) 법무부의 부장검사 인사ㆍ재산 검증

여권의 한 인사는 “검찰의 자체 개혁안이 시리즈로 발표된 배경은 문 대통령과 윤 총장 간의 보고에서 논의된 개혁의 수위와 관련이 있다”며 “특히 당시 논의가 조 전 장관의 거취와도 맞물려 진행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이 발표한 개혁안은 전용차량 중단 등 낮은 수위의 권한 축소로 시작했다. 그러다 검찰권, 감찰 등 수사 관행의 본질로 확대됐다. 분기점은 지난해 10월 14일 조국 전 장관의 사퇴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특히 윤 총장이 문 대통령에게 두 차례 개혁안을 따로 보고했다면, 첫 번째 보고가 미흡해 보완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조 전 장관이 한꺼번에 검찰의 힘을 빼는 방향의 개혁을 추진했다”며 “이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물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개혁 요구에 대한 동력도 사라졌다”고 했다.

실제 검찰의 자체 개혁안 발표는 지난해 11월 27일로 끝났다. 12월 5일 문 대통령이 추미애 장관을 지명하기 8일 전이다. 추 장관은 취임 5일만인 지난 1월 8일 윤 총장의 ‘수족’을 잘라내는 인사를 단행했다. 사실상의 개전(開戰) 선언이었다.

◇文, 尹이 보고한 개혁안 미흡하다 본 듯  

문 대통령이 그렸던 검찰 개혁은 원래 선(先) 자체개혁, 후(後) 공수처 등 시스템 정비로 이어지는 단계적 개혁이었다고 한다. 실제 지난 1월 14일 신년회견에서 이러한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연합뉴스

그는 “검찰이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검찰을 나무라느냐라는 점에 대해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여러 초법적인 권력이나 권한이 행사되고 있다고 국민이 느끼기 때문에 검찰 개혁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점을 검찰이 겸허하게 인식한다면 검찰 개혁을 빠르게 이뤄나가는 데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검찰 개혁은 검찰 스스로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줘야만 가능하고, 검찰총장이 가장 앞장서 줘야만 수사 관행뿐 아니라 조직문화의 변화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며 “윤 총장이 앞장서 준다면 국민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신뢰를 받게 되리라 믿는다”고 했다.

사실상 윤 총장에게 “자체 개혁을 먼저 해달라”는 마지막 공식 요청이었다. 신년 회견 이후 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검찰 스스로의 개혁을 요구한 적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여러 차례 신뢰를 밝히며 자체 개혁안을 요구했지만, 윤 총장이 지난해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혔던 자체 개혁안은 대통령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이 주도한 ‘윤석열 찍어내기’에 사실상 암묵적 동의로 해석되는 스탠스를 취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법적 권한을 뛰어넘는 초법적 권력이나 권한, 또는 초법적 지위, 그런 것을 누리기가 쉽기 때문에 그런 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권력기관 개혁 요구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실제 문 대통령은 10월 21일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언급하며 “우리 경찰은 스스로를 개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칭찬했다. 수사권 조정의 다른 당사자인 ‘검찰’이라는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문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는 발언을 했다. 메신저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문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고 했다"는 발언을 했다. 메신저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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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사는 “문 대통령이 끝까지 윤 총장에게 스스로 개혁해 달라고 요청해왔는데도 여당은 물론 참모들까지 ‘대통령이 강공 기조를 간다’고 잘못 판단하면서 상황이 이까지 와 버렸다”며 “만약 지금이라도 윤 총장이 강도 높은 자체 개혁안을 내기 위한 ‘검찰의 시간’을 요청할 경우 정치적 해결도 가능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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