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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바퀴 누벼 잡아낸 그놈...난징 의대생 28년 한 풀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공안부 형사국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12월 8일까지 중국 공안기관에서 해결한 살인사건은 5281건이다. 이 중에서 28년 전 일어난 난징 의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이 올해 붙잡혔다고 펑파이 신문이 9일 보도했다.

사건은 1992년 3월 20일 비 오던 밤 10시경 중국 난징 의과대학으로 거슬러 간다. 22살 여대생 린 모는 늦은 시간까지 강의실에서 자습하고 있었다. 1등 장학금을 여러 차례 받았던 린이었다.

린이 있던 강의실에 불쑥 나타난 건 술에 얼큰하게 취한 마 모였다. 마는 린에게 "밖에 나가서 같이 어울리자"고 했지만 린은 거절했다. 잠깐 교실을 떠났던 마는 몽둥이를 들고 와 린을 위협했다. 그는 린을 교실 밖으로 끌고 나가 성폭행했다.

28년전 신문에 나왔던 몽타주와 난징 의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마 모. [바이두, 웨이보]

28년전 신문에 나왔던 몽타주와 난징 의대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마 모. [바이두, 웨이보]

린이 저항하자, 마는 린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 린은 쓰러졌다. 마는 당황해서 달아났다. 그 뒤 마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사건 장소로 돌아가 여성이 가버렸는지, 경찰에 신고했는지 확인하려 했다.

돌아오니 린은 그대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심장을 만져보니 숨이 멎은 상태였다. 그는 강의동과 30~40m 떨어진 맨홀에 린을 버려두고 도망쳤다. 린이 발견된 건 4일 후인 3월 24일이었다.

1992년 3월 20일 실종된 뒤 4일이 지난 24일 주검으로 발견된 린 모. 난징 의대 캠퍼스를 조사중인 형사들의 모습. [장쑤 공공신문]

1992년 3월 20일 실종된 뒤 4일이 지난 24일 주검으로 발견된 린 모. 난징 의대 캠퍼스를 조사중인 형사들의 모습. [장쑤 공공신문]

많은 이들이 단서를 제공했고 수사 당국이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건 뒤 6개월가량 두문불출하던 마가 가족들과 타지로 이사를 가버린 것도 수사를 한층 어렵게 했다. 딸을 잃은 채 시름에 빠진 린의 아버지는 1999년 50대에 세상을 떠나고 린의 어머니만 남았다.

형사들이 자료를 체크하고 있다. 사건 발행 후부터 2018년까지 모인 관련 수사문건만 121권에 달했다. [CCTV]

형사들이 자료를 체크하고 있다. 사건 발행 후부터 2018년까지 모인 관련 수사문건만 121권에 달했다. [CCTV]

CCTV 등 중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28년간 난징시 공안국에서는 8명의 국장이 바뀌는 동안 이 사건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담당 멤버들이 떠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사건을 이어받았다.

사건 발생부터 2018년까지 모은 수사 관련 문건만 121권이나 됐다. 2018년 난징시 공안국은 의대생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새로 꾸리고 용의자 1만5601명을 전부 재점검했다.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수사 요원 중에는 10여개 성(省)을 누비느라 2만6000㎞를 이동한 사람도 있다. 거의 지구 반 바퀴를 돈 셈이다.

올해 2월 법의학자의 노력과 기술 발달 덕분에 수사팀은 현장에 남겨진 DNA 정보와 매우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그는 장쑤(江蘇) 성에 사는 1966년생 마 모였다. 키 170㎝라는 목격자 증언과도 일치했다. 경찰은 2월 23일 마의 집을 급습해 그를 체포했다.

마는 범행을 자백했다.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마는 "여자 대학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캠퍼스에 들어갔다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범행 후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 상황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자진해서 잔업을 하면서 자신을 궁지로 몰아갔다고 고백했다.

올해 10월 14일 난징시 중급 인민법원은 1심에서 마에게 살인 및 강간죄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사건팀 부팀장을 맡았던 난징시 공안국의 쑹민. 그는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은퇴할 수 있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CCTV]

사건팀 부팀장을 맡았던 난징시 공안국의 쑹민. 그는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하고 은퇴할 수 있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CCTV]

린의 어머니는 이날만을 기다렸다. 매년 3월 19일 어머니는 우시에서 4시간 기차를 타고 난징으로 갔다. 딸이 숨진 3월 20일, 어머니는 과일과 꽃을 들고 교정에 가서 촛불을 밝히고 딸을 추모했다. 그리고 난징시 형사국에 가서 사건이 얼마나 진전됐는지를 물어왔다고 한다.

올해 3월 20일 린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사건 현장에 가지 않고 공안국에 감사편지를 보냈다. 남편이 자신에게 유언으로 남긴 유일한 일인 딸을 죽인 진범을 찾는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난징시 공안 형사국의 쑹민(宋敏)은 지난 2018년 새 전담팀의 부팀장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쑹민은 "장기 미제사건이던 의대생 살인사건은 내가 맡고 해결한 마지막 사건"이라면서 감회에 젖었다.

난징 의대생 사건처럼 올해 중국에선 수년간 잠적했던 살인자들이 대거 붙잡혔다고 펑파이 신문이 보도했다. 총 4601명의 살인자를 체포했는데 이 중에서 20년 이상 잠적했던 사람은 1779명이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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