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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안쓰고 증거수집" 강간미수범 무죄주며 경찰 질타한 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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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메서 징역 12년을 받았던 강간미수범에게 10일 무죄가 확정됐다. [중앙포토]

1시메서 징역 12년을 받았던 강간미수범에게 10일 무죄가 확정됐다. [중앙포토]

법원이 특수강도·강간미수범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경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했다.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된 60대 피고인 A씨는 경찰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2심과 이를 수긍한 10일 대법원의 판결로 무죄가 확정되며 감옥행을 피하게 됐다.

경찰 초동수사 허점, 징역 12년 강간미수범 풀려나게 했나

처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현장에 나온 경찰관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식칼도 곧바로 압수하지 않고 6~7시간뒤 피해자의 모친으로부터 제출받아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 초동 수사의 허점으로 범인을 놓쳤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사건의 전말과 1심 유죄 

이 사건은 작년 제주에서 벌어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피고인은 새벽 2시경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식칼을 꺼낸 뒤 들이대며 "조용히 하고 통장 꺼내라, 네가 아는 통장 다 꺼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모른다"고 하자 피해자를 강간하려 했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도망쳤다.

1심은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100m 떨어진 CCTV에서 촬영된 피고인의 복장이 피해자의 진술과 일치한 점 ▶피해자가 진술한 색상의 옷을 입은 다른 사람이 CCTV에 촬영되지 않은 점 ▶범행 당시 피고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점 ▶범행장소에서 발견된 식칼에서 나온 Y-STR 유전자형 20좌위 중 피고인과 동일한 Y-STR 16좌위가 검출된 점 ▶피고인의 이전 범행과 방법이 유사한 점을 들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Y-STR 유전자는 개인 식별이 가능한 일반 STR유전자와 달리 Y염색체만 확인돼 동일한 부계의 남성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

법정 한 증인석에 모습.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뉴스1]

법정 한 증인석에 모습.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음. [뉴스1]

징역 12년을 무죄로 뒤집은 항소심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은 경찰의 증거 수집 과정에서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1심에서 결정적 증거가 된 'Y-STR' 유전자의 경우에도 피고인뿐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Y-STR' 유전자형과도 20좌위 중 15개의 좌위가 일치한다며 유죄 증거로 보긴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범행현장에 나온 경찰관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식칼도 곧바로 압수하지 않고 6~7시간뒤 피해자의 모친으로부터 제출받아 증거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식칼의 지문은 현장에서 바로 채취했지만 유전자 감정은 범행 6~7시간 뒤 뒤늦게 의뢰했다. 그 식칼에서 나온건 Y-STR유전자가 전부였다.

법원은 피해자가 범인의 인상착의를 '마스크''180cm''검은 옷차람''연령은 30~40대'라고 진술한 것과 달리 실제 범인의 신상(60대, 169cm)이 달랐다는 점도 주목했다. 또한 CCTV의 화질이 좋지 않아 식별이 어렵고 CCTV만으로 피해자의 주거지로 향하는 모든 침입 경로를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범행 당일 피고인의 행적이 의심스럽지만 유죄의 증거로는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런 항소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날 법원의 판결로 성범죄, 강도 전력이 있었던 피고인은 자유의 몸이 됐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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