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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백년 가업의 꿈이 상속세 때문에 깨진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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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성철 공인회계사 『행복한 증여 상속』 저자

김성철 공인회계사 『행복한 증여 상속』 저자

죽음과 세금은 피해갈 수가 없다. 사람의 일생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지출하면서 생활한다. 그리고 알뜰살뜰 평생 모은 재산을 가족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잘 나가던 중소기업, 펀드에 팔려 #상속 공제 확대로 성장동력 살려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제적 행위를 하며 그때마다 세금도 따라붙는다. 직장에서 받은 급여와 사업해서 번 이익에 대해서 소득세를 내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주유할 때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부담한다. 집과 자동차를 살 때 취득세를 내고, 보유하면서 재산세와 차량 보유세를 부담한다. 생이 끝날 때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이 있으면 상속인들이 상속세를 납부한다. 가히 세금과 같이하는 인생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살면서 이미 많은 세금을 부담했는데 죽은 뒤 상속할 때도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사유재산제도이고 헌법으로도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말하자면 상속 행위는 개인의 자유의사다.

이와 동시에 우리 헌법은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를 국가의 책임이라 규정해 세금을 통한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적정’이란 말이 모호하다.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기업의 최대주주는 할증 과세로 최대 60%까지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보유 주식을 매각해 상속세를 납부하다 보니 가업을 승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도 ‘적정한’ 소득 재분배일까. 예컨대 손톱깎이 업체인 쓰리세븐, 콘돔 제조업체 유니더스, 밀폐 용기로 유명한 락앤락,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 회사 주식을 외국계 사모펀드 등에 매각했다. 선대의 가업을 상속세 때문에 승계하지 못한 것이다. 가업을 유지하려고 해도 고용과 투자 등 기업 활동을 위해 써야 할 자금을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배당 등으로 유출하는 경우도 생긴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최대 55%) 다음이고 최대주주 할증 과세까지 하면 1위(60%)다. OECD 평균 상속세율의 두 배 수준이다. 소득세율이 높은 나라는 상속세율이 낮다. 살아서 내는 세금이 많으면 죽어서는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다. 한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점차 인상돼 현재 45%로 OECD 국가 중에서 상위 수준인데 상속세율은 1999년 이후 요지부동이다.

물론 사유재산권을 무제한 인정할 경우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할 수 있어서 고소득자에게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상속과 증여 행위에 세금을 부과한다. 그런데 부동산과 달리 기업은 경제 활동과 고용창출로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다 보니 정부가 가업상속 공제 제도를 마련해 가업을 승계할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공제 혜택을 준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일정 매출액 이하의 중견기업에 한정되고 적용 요건과 사후관리 요건이 까다로워 가업상속 공제를 적용받는 기업이 연간 100개사도 되지 않는다. 독일은 연간 1만 개를 상회한다. 상속 시점에 세금 혜택을 준다고 해도 면세가 되지는 않는다. 가업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상속세가 자본이득세인 양도소득세로 전환되는 것이다. 캐나다·스웨덴 등 다수의 국가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면서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고 있다.

이제는 가업 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고용 창출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행위로 볼 필요가 있다. 가업 승계는 선대부터 축적된 기술과 고용 인프라 등을 유지해 국가 경쟁력 강화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상속 공제 확대와 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의 성장동력을 강화해야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과도한 세금으로 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김성철 공인회계사·『행복한 증여 상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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