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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간첩 안 잡고 경제인 사찰 우려되는 국정원법 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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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황윤덕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원장

황윤덕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원장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경제 질서 교란 정보 수집 등을 담고 있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강행 처리할 방침이라고 한다.

거대 여당 단독으로 개정 몰아붙여 #국가 안보의 3대 축 허물지 말아야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정신을 무시하면서 여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국정원법 개정안은 왜 문제인가.

우선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다. 국정원의 수사권은 분단 현실에서 북한의 끊임없는 침투·도발이란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국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부여됐다.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은 헌법·국가안전보장회의법·정부조직법에 준거해 국가를 체계적·효율적으로 수호하라고 대통령에게 명령하고, 국정원이 정보·보안·범죄수사의 통합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북한은 1961년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 창설 이래 사실상 국정원의 존재를 없애는 대공수사권 폐지를 줄곧 집요하게 획책해왔다. 따라서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북한의 숙원을 실현해주는 자해행위이자 반(反)헌법적이고 위법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대공수사권 폐지였다. 국가 지도자의 말 한마디와 개인 의지가 곧바로 법이 되는 나라는 북한 김정은 집단 같은 독재 정권뿐이다.

둘째, 대공·대정부 전복 관련 국내 보안정보 규정의 삭제다. 대정부 전복, 즉 국가변란 기도에 대응한 보안정보 활동은 해외 모든 나라 정보기관들이 수행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대통령의 기본 책무임에도 문재인 정부는 “국내 보안 정보가 (국정원의) 국내 정보 활동의 뿌리”라고 주장하며 덤터기를 씌워 없애려 한다.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 같은 노릇이다. 저의가 무엇일까. 이 규정에 어긋나는 세력이 바로 이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기 때문 아닐까. 국가 안위의 문제가 진영 논리에 따라 정파적으로 흐르고 있어 대단히 우려스럽다. 보안정보 활동이 금지되면 역사상 최대 반국가단체인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같은 조직은 법망에서 자유롭게 된다.

지금 정부는 국가안보의 3대 축인 정보·보안·대공수사 중 보안정보 활동을 없애고 대공수사는 치안 담당 경찰이 전담하게 하려 한다. 고양이가 아무리 쥐를 잘 잡아도 호랑이는 될 수 없는 법이다.

셋째, 해외와 연계된 경제 질서 교란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도 문제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국정원은 “기존에 수행해 왔고 외국인과 외국인 연계 내국인으로 제한해 민간인 사찰 우려는 기우”라고 반박했다.

기존의 경제방첩과 국가방첩 범위에서 조용히 수행하면 될 것을 굳이 입법화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 활동이 위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어서 이참에 합법적 근거를 마련해 활성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경제 영역은 무한히 넓어 정치·문화·환경 등 모든 분야로 확장돼 신원 정보와 비위 첩보가 무수히 축적될 것이다. 급기야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별건 수사와 견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국내정보의 심각한 폐해다.

특히 사람·자본이 국제화된 세상에서 해외 연계가 필수적인 중견기업·대기업 등이 국정원의 경제 질서 교란 추적 대상이 된다. 정권에 따라 정보 활동 방향과 범위가 달라져 폐해는 반복될 것이다.

과속은 곧잘 사고로 이어진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나(노자 『도덕경』),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잉태한다(『성경』)고 했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국정원법 과속 개악을 멈추고, 대공수사권을 ‘외청’ 형태로라도 존치하되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국정원장 임명 동의권과 임기제 및 탄핵제도를 도입하면 문제는 일거에 해소될 것이다.

황윤덕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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