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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징계법의 위헌성, 그대로 둘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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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

“Nemo iudex in sua causa”(누구도 자기 사건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 라틴어). 자연법적 정의를 표현한 법률 격언이다. 이해 당사자인 소추자가 아니라, 공정한 제3자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장관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심판은 #이해당사자가 심판자로 나서는 격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징계를 청구했고, 윤 총장은 헌법재판소에 장관이 징계위원회를 좌지우지하는 검사징계법 제5조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위헌 소원을 청구했다. 검사징계법 제7조에서는 징계 혐의자가 일반 검사인 경우 검찰총장이 징계를 청구하고, 같은 법 제5조에서는 장관이 징계위를 구성하도록 한다. 그런데 징계 혐의자가 검찰총장인 경우 장관이 징계를 청구함과 동시에 징계위를 구성한다.

검찰총장에게도 절차적 권리가 보장돼야 함에도 이때만큼은 장관이 소추권과 심판권을 동시에 행사할 수 있다. 일반 검사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징계를 받게 돼 있다. 징계 혐의자에게 검사징계법 제17조에 따른 기피 신청권이 있지만, 이조차 장관이 임명한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뿐이므로 변하는 건 없다. 이러한 검사징계법은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적법 절차 원칙(due process of law)과 견제·균형 원리(checks and balances)에 정면으로 반한다. 적법 절차 원칙은 형식적인 절차뿐 아니라 실질적 법률의 내용이 정의에 합치돼야 하고, 절차의 적법성뿐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까지 보장돼야 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한다.

장관이 심판까지 좌우하는 것은 정의에 합치되지 않고, 절차의 적법성과 적정성도 무시하는 처사다. 일방의 이해 당사자인 장관의 소추가 곧 심판이기 때문이다. 장관이 각종 절차를 위반한 이유도 이러한 전권 때문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소송 절차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은 매우 중요하다.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판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형사소송에서 소추권자인 검사도 마찬가지다.

소추와 심판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실질적으로 분리되고,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검찰총장은 헌법에 근거를 둔 국가 기관으로, 국무회의 심의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고,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검찰청법에 따라 임기 2년이 보장된다.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검사징계법은 정치인 장관에게 사실상 해임권을 부여했다. 대통령에게도 없는 권한이다. 이 위헌적 권한 행사는 나흘 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는 검사징계법 제정 당시의 입법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한 현재 상황에서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19세기적인 명령·복종의 특별 권력관계로 인식하는 법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적법 절차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헌법의 요청이고, 결과를 예단하지 말라”던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은밀하게 텔레그램을 통해 예단을 고백하다 들켰다. 그 텔레그램에서 법관징계법을 운운했지만, 준사법기관인 검사도 사법기관인 법관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는 것이 검찰의 독립성을 위해 필요하다.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의 경우 더욱 그렇다. 심판관(judge)의 어원인 ‘iudex’의 의미는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다. 장관의 소추권 행사로 심판이 끝난다면 정의를 말한다고 할 수 없다.

한국 법치주의는 최대 위기다. 선출 권력을 수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징계·해임할 수 있게 됐다. 헌법 수호의 헌법재판소는 지금이 헌법을 말할 때다. 적법 절차 원칙, 견제·균형 원리를 되살려 검사징계법의 위헌성을 시급히 해소해 주길 기대한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헌법재판연구원 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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