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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검찰총장 직무배제, 법치주의 무너뜨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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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검찰 개혁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3년 반을 추진했던 검찰 개혁의 종착점이 납득할 수 없는 사유에 의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징계 회부라니, 정말 이를 위해 검찰 개혁을 외쳤던 것인가?

추미애 장관은 정치로 법치 유린 #검찰의 정권 종속 기도 막아야

검찰 개혁의 목표는 올바른 검찰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권의 시녀’가 아닌,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한 것이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에 회부한 이유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치인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공정한 법 집행을 책임져야 할 검찰총장을 몰아세우는 모습은 정치가 법치를 유린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무원에 대한 징계란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에 대한 위반이 있을 때 이를 제재하는 것이다. 이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인정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법상 대통령의 탄핵도 징계의 일종이라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미국처럼 정치적 탄핵도 아니고, 영국처럼 형사 재판적 성격의 탄핵도 아니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에 의해 파면된 후 형사재판을 별도로 받았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징계는 신중해야 하므로 탄핵 절차도 국회 소추에 이어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어야 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다수를 얻어 국회를 통과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 사유로 제시한 위법 행위가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청법 제37조는 “검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이나 적격심사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또는 퇴직의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윤 총장의 파면을 위해서는 탄핵 결정이 있어야 하지만, 해임·면직은 징계에 의해 가능하다. 하지만 해임·면직도 파면에 버금가는 중대한 징계인 만큼 이를 정당화할 중대한 위법 행위가 확인돼야 한다. 그런데 추 장관이 제시한 여섯 가지 사유는 해임은커녕 도대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이라는 건 여럿이 모인 가운데 잠시 인사한 정도이고, 감찰 관련 정보의 외부 유출이라는 건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유출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을 윤 총장의 행동으로 짐작한 것일 뿐이다. 감찰에 대한 비협조는 오히려 추 장관이 절차를 위반한 점이 더 문제이고,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퇴직 후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도 억지스럽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판사 사찰’ 의혹이다. ‘사법 농단’ 의혹을 연상시키는 이 표현은 사실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는 게 아니라, 국민의 검찰 불신을 부추기려는 의도, 검찰·법원을 대립 구도로 몰고 가려는 의도, 그런 프레임 속에서 정치적 선동으로 징계를 결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추 장관이 주장하듯 정말 판사 사찰이 있었다면 윤 총장 개인의 징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관련자 모두를 확인해 처벌해야 할 문제 아닌가?

정치가 법을 흔들고 정치하듯 법을 집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의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앞으로는 정치인이 법무부 장관을 해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까지 해 놓고서 검찰을 기어이 정권에 종속시키려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희망이 있다. 법치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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