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 백신, 실험용 아니냐" 美서 커지는 '접종 반대'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지만 백신에 대한 불신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각에선 백신이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3일 뉴욕에서 열린 '봉쇄 반대 시위'에서 시위대가 백신 주사를 맞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3일 뉴욕에서 열린 '봉쇄 반대 시위'에서 시위대가 백신 주사를 맞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최근 일부 주에서는 집단면역 형성을 위해 계획했던 백신 의무접종 방안을 철회했다. 수년간 반(反) 백신 운동을 벌여온 백신 반대론자들의 반발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백신 반대론자들은 최근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에 반대해 온 시민단체, 종교단체들과 결집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은 “개인 인권 침해”라며‘의료의 자유’에 따라 백신을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하게 만든 백신, “믿을 수 없어” 

코로나19 백신에 회의적인 건 백신 반대론자들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전염병 관련 예방접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온 사람들도 코로나19 백신에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거주하는 자넬레 윗튼은 미국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A)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백신 접종에 회의적이지 않지만 코로나19 백신은 당장 맞지 않을 것”이라며 “백신 개발 속도전이 오히려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임박한 가운데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임박한 가운데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워프 스피드 작전’에 힘을 쏟았지만, 개발 속도에만 급급해 안전성과 효과를 제대로 입증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최대 비영리 민간건강단체인 ‘카이저 가족 재단’이 지난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2%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직전 코로나19 백신 승인과 관련해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압력을 넣은 것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필라델피아대 백신 전문가이자 FDA 백신 자문가인 폴 오핏도 “백신 반대론자들의 냉소주의와 일반인들의 회의론과는 차이가 있다”면서도 “현재 미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백신 안전성에 대한 걱정은 건전하고,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미 의료인들도 “세부 자료 공개하라”

백신 우선 접종자로 분류된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백신 접종이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다. 이들은 백신 안전성을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AFP]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AFP]

미국 최대 간호사 노동조합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임상시험에 대한 세부 자료가 공개될 때까지 어떤 백신도 의무로 접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셸 마온 미 간호사연합 대표는 “지난해 간호사들의 독감 백신 접종률은 92% 이상으로, 일반적인 백신 접종에는 회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당분간 실험용 백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로런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오닐연구소장도 “병원은 의료종사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 동시에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흑인·라틴계, 인체실험 역사 '백신 불신'으로  

미국의 흑인, 라틴계 사회에서는 인종 차별과 미 연방정부에 대한 의심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과거 미 정부가 흑인 사회를 대상으로 강행했던 비윤리적 생체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에 흑인 대다수가 백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보건·교육·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코비드 공동프로젝트’가 지난 9월 미국 내 흑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안전하다”고 답한 비율은 14%, “효능이 있을 것”이라는 비율은 18%에 그쳤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저소득 라틴계, 흑인 계층을 코로나 취약 집단으로 분류하고, 백신 우선접종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저소득 라틴계, 흑인 계층을 코로나 취약 집단으로 분류하고, 백신 우선접종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이들은 과거 흑인 노예들을 의약품이나 수술의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역사를 떠올렸다. CNN은 대표 사례로, 1932년부터 40년간 진행된 ‘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을 꼽았다.

당시 미 보건당국은 매독 치료를 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흑인 600명을 대상으로 비밀 생체 실험을 감행했다. 당사자들에게는 숨기고, 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이 실험으로 7명이 매독으로, 154명이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흑인 사회는 당시의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고 극단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오하이오주에 사는 흑인 카르멘 베일리는 “올해 4월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서 “지금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은 (실험용) 기니피그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흑인 등 유색인종 환자가 40%에 이른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취약 집단인 이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할 경우 미국 내 코로나19 치료에까지 지장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인권 운동가인 알 샤프턴 목사 등 유색인종 지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백신을 맞겠다고 공언하는 등 백신 불안감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내 백신 거부감이 적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의무적으로 접종하도록 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