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영업의 꽃’이 지고 있다. ‘제판분리(제조와 판매 분리)’ 바람이 불며, 특정 보험사에 소속돼 해당 보험사의 상품만 판매하는 전속설계사를 줄이는 보험사가 늘면서다.
설계사 조직 분사, 비용 줄이기 #판매수수료 제한 ‘1200%룰’도 영향 #전속보다 보험대리점 영업이 유리 #10명 중 6명이 1년 안에 회사 옮겨
미래에셋생명은 1일 전속 설계사 3300여 명을 자회사형 보험대리점(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이동한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생명은 상품개발과 자산운용에 집중하고, 자회사는 영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생명도 지난달 공시를 통해 내년 초 2만 명 가량의 전속설계사 영업조직을 분리해 새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중소형사 위주로 제판 분리가 논의됐지만, 한화생명 등 대형사가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보험업계 전반으로 제판분리 기류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제판분리에 나서는 건 비용절감이 주된 이유다. 보험산업은 저금리 장기화 등으로 대표적인 제로성장 산업이 됐다. 보험사마다 이익을 내고 있지만, 산업 자체의 성장보다 과거에 싸게 산 채권 등 자산을 비싸게 팔아 수익을 내고 있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속 설계사 조직을 분사할 경우 지점 유지비, 관리비, 교육훈련비 등 각종 고정비용이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특수고용직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도 부담이다. 보험설계사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으로 꼽힌다. 보험업계는 고용보험 의무화 시 추가 부담비용이 매달 173억 7000만원은 될 걸로 보고 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가 2018년 분석한 결과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각종 비용이 늘어나면 저성과 설계사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이 대두할 텐데, 본사 전속설계사의 경우 아무래도 구조조정을 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향후 정규직화 요구나 노조 설립 등 다양한 변수가 있는 만큼 덩치가 큰 전속설계사 조직을 그대로 안고 가기엔 부담을 느끼는 보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들의 잦은 이직도 고민이다. 2019년 기준 생명보험 전속설계사가 1년 이상 한 회사에 머무른 비율(13개월 정착률)은 38.2%였다. 10명 중 6명은 1년내 회사를 떠나 GA 등으로 이직했다. 전속 설계사는 특정 보험회사에 소속돼 해당 회사의 보험상품만 판매할 수 있는, 반면 GA는 다른 보험회사의 다양한 상품도 함께 취급할 수 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상품도 함께 판매할 수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보험설계사의 첫 해 판매 수수료를 월 보험료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는 ‘1200%룰’이 시행된다. 판매 건당 수수료가 줄어들다보니 설계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GA 소속 설계사가 유리하다. 보험사 입장에선 일 잘하는 설계사를 다른 GA에 빼앗기는 것보다 자회사로 GA를 만들어 판매조직을 분리시키는 게 낫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200% 룰 도입으로 우수 설계사의 경우 GA에 가는 게 소득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며 “인력 유출 우려로 자회사형 GA 설립을 고민하는 곳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속설계사 규모가 시장점유율을 결정하는 시대도 지났다. 보험시장의 판매주도권은 전속설계사 조직에서 GA로 넘어간 지 오래다. 지난해 말 기준 GA 소속 설계사는 23만2770명으로, 보험사 전속설계사(18만6922명)를 넘어섰다.
소비자들이 보험을 선택하는 기준도 변하고 있다.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며 소비자들이 여러 보험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하고 있다. 향후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이 보험업 진출이 본격화될 경우 이런 경향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정원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 가입 결정에 대한 영향력은 보험회사(전속설계사)에서 GA로 그리고 소비자로 넘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