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홀로코스트, 위안부…사회 풍자하는 브릭 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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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25)

브릭은 멋진 예술 작품의 재료로도 사용될 수 있지만 그 본성은 아이의 장난감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브릭 아트 작품은 어린이가 좋아하는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장면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브릭을 재료로 사용하는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시선도 존재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브릭의 본성 때문에 다른 어떤 예술 작품보다 메시지를 더 강렬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즈비그녜프 리베라(Zbigniew Libera)의 '집단수용소(Konzentrationslager)'. [사진 raster art 갤러리]

즈비그녜프 리베라(Zbigniew Libera)의 '집단수용소(Konzentrationslager)'. [사진 raster art 갤러리]

위 사진은 폴란드의 예술가 즈비그녜프 리베라가 레고 브릭과 미니 피겨를 이용해 만든 ‘집단 수용소 (Konzentrationslager)’라는 작품입니다. 수용소의 막사, 감시탑, 화장터, 그리고 수용자에게 생체실험하는 장면까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잔혹한 만행이 작품 곳곳에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완성된 작품의 사진을 찍어 실제 레고 상품처럼 박스까지 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레고사에서 실제로 제품을 발매하는 것으로 착각한 일부 유대인 단체가 레고 불매운동을 하려고 하기도 했답니다. 이 작품은 1997년 덴마크 코펜하겐을 시작으로 폴란드, 독일, 브라질 등에서 전시되었고 권위 있는 현대 미술 전시회인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초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시회의 폴란드관 담당자는 문제의 작품인 ‘집단 수용소’는 전시할 수 없으니 이 작품을 제외한 다른 작품만을 전시할 것을 작가에게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리베라는 결국 비엔날레 참여 자체를 포기하였습니다.

작가 그 자신이 폴란드인인 만큼 작가는 잔혹하고 슬픈 역사인 홀로코스트를 아이들의 완구인 레고 브릭으로 제작함으로써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고 현대인에게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려는 의도였겠지만, 이와 반대로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으로 다룬다는 것은 도가 넘는 행동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뒤늦게 리베라의 작품을 접한 레고사는 작품의 전시를 중단시키고 작가를 고소하려고도 했지만 오히려 예술 활동에 대한 기업의 지나친 검열이라는 비판을 받고 포기합니다. 이처럼 브릭으로 만든 예술 작품은 다양한 사회 풍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고 그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지난 글에 소개한 작품 중에도 이처럼 다양한 의도를 담은 목소리를 내는 작품이 많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세계적인 브릭 아티스트 에코우 니마코의 ‘Cavalier Noir(카발리에 누아르)’는 서구 문명 중심의 식민주의 사상을 비판하고자 만든 작품입니다. 서양의 강대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말을 탄 나이 든 백인 영웅의 기념 동상이 아닌 검은 유니콘을 탄 어린 흑인 전사의 동상으로 말이죠. 에코우 니마코 역시 흑인으로, 그는 흑인에 대한 편견·불평등·차별 등에 대한 저항과 항변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오로지 검은색의 브릭으로만 제작했습니다.

에코우 니마코의 작품 'Cavalier Noir'. [사진 에코우 니마코]

에코우 니마코의 작품 'Cavalier Noir'. [사진 에코우 니마코]

한국을 대표하는 브릭 아티스트 김학진 작가도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코뿔소’는 멸종 위기의 코뿔소를 통해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코뿔소의 뿔은 남아공의 밀렵 시장에서 불법으로 수천만 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코뿔소가 뿔을 잃고 점점 멸종되고 있음을 투명한 브릭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김학진 작가의 작품 '코뿔소'. [사진 브릭캠퍼스]

김학진 작가의 작품 '코뿔소'. [사진 브릭캠퍼스]

김학진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릴레사’입니다. 리우 올림픽 당시 국민을 탄압하는 정부를 세상에 고발하는 엑스(X) 자 세리머니로 화제가 된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페이사 릴레사’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작품으로 이를 통해 평화를 갈망하는 외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김학진 작가의 작품 '릴레사'. [사진 브릭캠퍼스]

김학진 작가의 작품 '릴레사'. [사진 브릭캠퍼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표현한 한성욱 작가의 ‘약속’도 브릭을 통해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성욱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조명되는 것을 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외로운 소녀상 옆에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성욱 작가의 작품 '약속'. [사진 브릭캠퍼스]

한성욱 작가의 작품 '약속'. [사진 브릭캠퍼스]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주로 창작하는 나경배 작가의 ‘천사’입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는 세 명의 천사가 백인, 황인, 흑인으로 표현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천사의 모습이 ‘금발의 백인’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구상의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모습의 천사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나경배 작가의 작품 '천사'. [사진 브릭캠퍼스]

나경배 작가의 작품 '천사'. [사진 브릭캠퍼스]

아래 사진의 작품을 만든 영국의 데이브 칼레타는 유치원 선생님이자 브릭 아티스트입니다. 최근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남성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죠. 이로부터 시작된 흑인 인권 운동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가진 ‘Taking a Knee’, 즉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미니랜드 피겨 스케일로 표현되어 있네요. 사람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BLM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시위의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Dave Kaleta의 작품 'A Call To Action'. [사진 Dave Kaleta 트위터]

Dave Kaleta의 작품 'A Call To Action'. [사진 Dave Kaleta 트위터]

‘74louloute’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의 브릭 아티스트는 소셜 네트워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침범했는지 경각심을 갖기 위해 ‘Social Addiction’, 즉 소셜 중독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NS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떠오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든 나쁘든 앞으로 SNS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어떤 방향으로 진화시켜야 하는지는 우리의 숙제겠지요.

Social Addiction. [사진 74louloute 인스타그램]

Social Addiction. [사진 74louloute 인스타그램]

이처럼 모든 예술 세계가 그렇듯 브릭 아트에도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한계는 없습니다. 오히려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브릭이라는 소재는 전 세계 최고의 완구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브릭으로 제작된 작품이 때로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고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브릭 아트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집에 갖고 있는 브릭으로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은 마지막 칼럼이 될 것 같습니다. 브릭 아트 테마파크인 ‘브릭캠퍼스’의 설립 이야기로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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