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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로 젊어진 임원, 129대 1 좁은문…‘난 가늘고 길게 간다’ 임포족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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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임원이 되는 것도 어렵지만, 임원으로 머무는 게 더 어려워요. 괜히 임시직원(임원)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유통기업 A부장)

인사철 직장인 승진문화에 변화 #연봉 오르지만 실적·세대교체 압박 #상무·전무 돼도 1년 뒤 짐싸기도 #워라밸 맞물려 승진 기피 신풍속

연말 인사시즌을 맞아 직장가가 술렁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타격, 변화에 대한 절박함 등이 더해져 대기업 그룹사들을 중심으로 어느 해보다 과감한 인사가 이뤄지는 중이다.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 승진이다. 하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 임원 승진 열기는 과거만큼 뜨겁지 않다. 경쟁률이 갈수록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직장인들이 중시하는 가치도 몇 년 새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100대?기업?임원?1명당?직원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00대?기업?임원?1명당?직원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주요 그룹 임원인사의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신상필벌’로 요약된다. LG그룹이 지난 26일 발표한 신규 임원 중 45세 이하는 전체 124명 가운데 24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980년대생 임원 3명을 비롯해 신규 임원 가운데 1970년 이후 출생 비중은 지난해 57%에서 올해 70%로 크게 높아졌다.

롯데그룹 역시 새롭게 대표 자리에 오른 13명 중 6명이 50대다. 앞서 현대홈쇼핑·현대백화점면세점·현대L&C 등도 대표이사를 60년대생으로 세대교체했다.

나이와 성별, 순혈주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임원으로 가는 문 자체는 좁아지는 추세다. 롯데그룹만 해도 전체 임원 승진자 수를 지난해 대비 80% 수준으로 줄였고, 신세계그룹 이마트 부문도 100명이 넘던 임원을 10%가량 줄였다.

직장에서?이루고?싶은?최고의?목적은?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직장에서?이루고?싶은?최고의?목적은?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 유니코써치가 2020년 반기보고서를 기준으로 100대 기업 현황을 분석해 보니 임원은 6578명으로 전체 직원 84만7442명 중 0.77%에 불과했다. 100대 기업 임원 1명 당 직원 수는 2011년 105.2명에서 매년 늘어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128.8명을 기록했다. 대기업에서 임원 될 확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셈이다.

일단 임원이 되면 권한과 연봉은 크게 상승한다. 국내 15대 그룹 계열사 C씨는 “부장 연봉이 1억 정도라면 첫 임원은 1억5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할인과 무료이용 등 각종 혜택과 성과급 등을 포함하면 실제론 2배 이상 연봉 상승”이라고 했다.

문제는 ‘꽃의 수명’이다. 임원이 되면 정년을 보장받는 정규직원에서 계약직으로 지위가 바뀌는 게 대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상무·전무 등 직급별로 2~3년의 임기를 채우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1~2년 만에 짐을 싸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기업 박 모 부장은 “임원은 임시직원이라는 별칭처럼 법적으론 1년 계약직”이라며 “심지어 너무 정치적이거나 욕망이 과하거나 속썩일만하다 싶으면 빨리 임원을 시켜서 1년 만에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임원 승진에 ‘올인’ 하는 직장인들이 점점 줄고 있다. 제조기업 부장 정모(49)씨는 “결혼이 늦어서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생이다. 학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임원보다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삼성전자 직원 D씨는 “회사 임원이 토요일 일요일을 제대로 쉬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연봉이 높아도 저렇게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인사·조직 분야 전문가인 박원우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평생직장 개념이 옅어진 시대에 직원들에게 일률적으로 최고 수준의 열정과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며 “직원들에게 성과에 따른 보상을 확실히 보장하는 한편, 지금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다음 직장이나 창업 등에 활용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주는 쪽으로 인재육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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