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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척당 100억원 '프랑스 갑질' 제재…LNG 기술 독립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공정거래위원회가 LNG 화물창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GTT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재주는 한국 조선사가 넘고 돈은 GTT가 번다'는 조선업계의 불만이 해소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연료추진 원유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공정거래위원회가 LNG 화물창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GTT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재주는 한국 조선사가 넘고 돈은 GTT가 번다'는 조선업계의 불만이 해소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연료추진 원유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공정거래위원회가 ‘멤브레인’형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貨物艙) 독점 기술을 가진 프랑스 GTT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한국 조선업체들이 ‘갑질’ 당했던 관행을 끊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는 지난 25일 “GTT가 LNG 선박을 건조하는 국내 조선업체를 상대로 LNG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면서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구매하도록 강제한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과징금 125억2800만원을 부과한다”고 결정했다.

‘프랑스 갑질’ 첫 제재

LNG 화물창(저장탱크) 기술 라이선스는 천연가스를 초저온(-163℃)에서 압축·냉각해 액체 상태로 운반하기 위한 기술이다. 기체 상태인 천연가스를 액화하면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 저장과 운송이 편리하다.

LNG선의 화물창(저장탱크)은 모스형(위)과 멤브레인형으로 나뉜다. 멤브레인형은 적재공간의 효율성이 높고 선박 운항시 시야가 확보돼 대형 LNG선의 95%를 차지한다.

LNG선의 화물창(저장탱크)은 모스형(위)과 멤브레인형으로 나뉜다. 멤브레인형은 적재공간의 효율성이 높고 선박 운항시 시야가 확보돼 대형 LNG선의 95%를 차지한다.

문제는 선박 내에 액화 LNG를 저장하려면 저장탱크 안팎의 열전달을 차단해 기화를 막고, 탱크 바깥의 선체가 극저온에 노출돼 손상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LNG 선박은 화물창이 선체에서 떨어져 있는 독립지지형(모스)과 멤브레인 형으로 나뉘는데, 한국 조선업체들은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멤브레인 형을 채택해 왔다.

GTT는 멤브레인 화물창에서 시장 점유율 95%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 사업자다. 기술 라이선스뿐 아니라 설계와 각종 테스트, 생산 현장 감독을 포함하는 엔지니어링 서비스까지 반드시 한꺼번에 구매하도록 해 조선업체들의 불만이 컸다.

국내 조선업체 관계자는 “1994년 가즈트랑스포르와 떼끄니가즈가 합병해 GTT가 되기 전만 해도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별도 구매할 수 있었다”면서 “필요에 따라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LNG선의 화물창(저장탱크)은 모스형(왼쪽)과 멤브레인형으로 나뉜다. 멤브레인형은 적재공간의 효율성이 높고 선박 운항시 시야가 확보돼 대형 LNG선의 95%를 차지한다.

LNG선의 화물창(저장탱크)은 모스형(왼쪽)과 멤브레인형으로 나뉜다. 멤브레인형은 적재공간의 효율성이 높고 선박 운항시 시야가 확보돼 대형 LNG선의 95%를 차지한다.

당장 국산화는 어려워  

GTT는 LNG선박 1척당 100억원에 달하는 로열티를 챙기면서 국내 조선업체들 사이에서 ‘프랑스 갑질’이란 말까지 나왔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당장 계약 조건이 바뀌는 건 아니다. GTT는 공정위 결정이 나온 당일 공식 입장을 내 “LNG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와 엔지니어링 서비스는 통합돼 제공돼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조선업체들이 GTT의 기술을 통해 함께 성장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적절한 절차를 통해 항소할 예정이며, 법원의 최종 판단 때까지 (과징금 부과) 결정은 미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LNG선 로열티 문제가 ‘국부 유출’로까지 여겨지면서 정부는 2004년부터 10년에 걸쳐 국내 조선업체, 한국가스공사 등과 함께 국산 저장탱크 기술인 ‘KC-1’을 개발했다. 2018년 삼성중공업이 이 방식으로 건조한 LNG 운반선을 SK해운이 인도받아 운항했지만 저장탱크 외벽에 결빙 현상이 나타나는 등 결함이 발생했다.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을 적용한 SK해운의 'SK 스피카'호. 화물창 외벽에 결빙이 생기는 등 결함이 발생해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사진 한국가스공사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을 적용한 SK해운의 'SK 스피카'호. 화물창 외벽에 결빙이 생기는 등 결함이 발생해 법적 분쟁을 겪고 있다. 사진 한국가스공사

2세대 LNG 저장탱크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당장 국내 조선사들이 도입하긴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LNG 선박은 발주하는 선사와 어떤 기술을 적용할지 계약 조건에 넣는데 ‘트랙 레코드(운용 이력)’이 부족한 다른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배를 주문하는 선사들이 가격이 비싸더라도 검증된 기술을 원한다는 의미다.

전문가 “협상력 높일 계기”

하지만 공정위가 GTT의 ‘갑질’ 관행에 제동을 걸면서 단기적으론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전망이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이번 결정으로 GTT도 한국 조선업체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됐다”며 “협상력을 높여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월 말 현재 세계 LNG선 수주잔량은 119척이다. 이 중 103척을 한국 조선업체가 건조하는데, 공정위 결정 이후 GTT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내년 이후 본격화하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 협상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이란 예측이다.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를 앞두고 한국 조선업체들이 LNG 화물창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수주한 LNG 운반선 모습. 사진 대우조선해양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를 앞두고 한국 조선업체들이 LNG 화물창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수주한 LNG 운반선 모습. 사진 대우조선해양

김현수 대한조선학회장(인하공업전문대 교수)도 “단기적으론 GTT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론 2세대 국산 LNG 저장탱크 기술 개발에 집중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국산 LNG 저장탱크 기술이 적용된 선박의 트랙 레코드를 쌓아가면 GTT는 당장 로열티를 낮추게 될 것”이라며 “공정위 결정이 당장의 ‘유효타’가 아니더라도 의미를 갖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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