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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이 된 신동…잘가! 도나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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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마라도나(왼쪽 둘째)는 1986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한국 허정무에 걷어차였다. [중앙포토]

마라도나(왼쪽 둘째)는 1986년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한국 허정무에 걷어차였다. [중앙포토]

향년 60세로 26일 세상을 떠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 스타였다. 세계 축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부침도 심했다. 조국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고 최우수선수(MVP)에 뽑히는 영광의 주인공. 하지만 축구장 밖에서는 마약, 알콜 중독, 폭행, 탈세 등 경기 외적 요인으로 여러 번 문제를 일으켰다. 마라도나 축구 인생에서 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다섯 장면을 뽑았다. 자칭 ‘마라도나 매니어’ 한준희 해설위원이 도움말을 줬다.

마라도나 축구 인생 다섯 장면 #1986 월드컵 우승으로 MVP 등극 #약물·마약·탈세·폭행 등 구설수 #월드컵 유치전 당시 한국 편에 서

◆‘신의손’이 도운 월드컵 우승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는 머리 대신 손으로 골을 넣었다. [FIFA 페이스북]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 8강전에서는 머리 대신 손으로 골을 넣었다. [FIFA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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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가 ‘월드 스타’로 발돋움한 무대다. 잉글랜드와 만난 8강전에서 마라도나는 심판 눈을 속이는 교묘한 핸드볼 파울로 골을 넣었다. 이를 계기로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경기 직후 마라도나가 “신의 손에 의해 약간, 나머지는 머리로 넣은 골”이라 언급한 게 계기였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하프라인에서 출발해 68m를 드리블한 뒤 골키퍼 등 상대선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마라도나 천재성의 상징 같은 골이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끝난 이 대회에서 마라도나는 5골 5도움으로 MVP에 뽑혔다.

◆‘태권킥’이 맺어 준 한국과 인연

수비수 서너 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상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파울 뿐이었다. 마라도나가 공을 잡으면 거친 몸싸움과 태클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1986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한국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의 간판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김평석, 김용세, 박경훈, 허정무가 돌아가며 육탄방어를 펼쳤다. 볼을 걷어내려다 본의 아니게 마라도나를 걷어찬 허정무의 모습은 ‘태권 킥’이라는 타이틀로 전 세계에 소개됐다. 출발은 악연이었지만,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에 우호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을 펼칠 당시, 일본 편에 선 펠레와 달리 공개적으로 한국을 지지해 도움을 준 일화는 유명하다.

◆나폴리에 강림한 축구의 신

현역 선수 시절 마라도나의 전성기는 1984~1991년 7년간 몸 담은 나폴리(이탈리아) 시절이다. 마라도나 입단 전까지 이류 팀으로 평가받던 나폴리는 ‘작은 거인’을 앞세워 유럽 톱 클래스로 성장했다. 나폴리는 1987년 이탈리아 세리에A(1부 리그) 정상에 올랐고, 이어 88, 89년 유럽축구연맹(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잇달아 품에 안았다. 나폴리 팬들이 지금도 마라도나를 ‘나폴리의 왕’, ‘축구의 신’으로 부르며 추앙하는 이유다.

◆굿바이 이탈리아, 내리막의 시작

1994년 월드컵 때 도핑에 적발됐다. [FIFA 페이스북]

1994년 월드컵 때 도핑에 적발됐다. [FIFA 페이스북]

이탈리아 나폴리를 유럽 최강 팀으로 이끌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 나폴리를 유럽 최강 팀으로 이끌었다. [AP=연합뉴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진가를 다시금 일깨운 무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라도나가 사랑했던 이탈리아와 결별하는 이유가 됐다.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전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이탈리아를 꺾은 게 발단이었다. ‘역대 최강’을 자부하던 이탈리아를 떨어뜨린 후폭풍은 컸다. 대회 이후 이탈리아 언론과 팬은 연일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마라도나를 향한 살해 위협까지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마라도나는 마약에 손을 댔고, 선수로서 내리막을 걸었다. 1992년 세비야(스페인)로 이적하며 이탈리아를 떠났지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기행으로 얼룩진 인생 2막

201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허정무 감독과 24년 만에 재대결 했다. [연합뉴스]

2010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허정무 감독과 24년 만에 재대결 했다. [연합뉴스]

마라도나의 이후 삶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아르헨티나 2-1 승) 직후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에페드린) 복용 사실이 들통났다. 팀도 개인도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이후에도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했고, 탈세와 폭행 등 숱한 물의를 일으켰다. 자신의 별장을 찾아온 취재기자를 향해 공기총을 쏴 법정에 서기도 했다. 현역 은퇴 이후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알와슬, 알푸자이라(이상 UAE), 시날로아(멕시코), 힘나시아(아르헨티나) 등 여러 팀 사령탑에 올랐지만, 지도자로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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