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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요리' 밥상 상륙작전

중앙일보

입력

주부 배수영(32.회사원)씨는 매주 토요일 할인점으로 장을 보러 나간다. 일주일치의 장보기를 이날 하루에 해치우기 위해서다.

배씨의 장바구니는 각종 간편식품들로 가득찬다. 즉석밥.두부찌개 양념장.오므라이스 소스 등등. 전자레인지에 몇분 동안 돌리거나, 냄비에 넣고 끓이거나, 프라이팬에 살짝 굽기만 하면 되는 제품들이다.

국과 반찬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양파.마늘.두부 등 신선식품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엔 가공식품들의 맛이 많이 좋아졌어요. 구태여 파.마늘을 사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어서 바쁠 때 자주 이용해요.

음식 재료를 많이 사다놓으면 썩어버리기 일쑤니까요." 할인점 즉석 조리식품 코너는 배씨와 같은 젊은 주부들로 북적거린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1백여 종류의 즉석 조리식품을 판다. 지난해에 비해 종류도 20여개나 늘었고 매출도 30% 이상 늘어났다.

전자레인지 하나면 모든 요리를 5분 안에 끝낼 수 있는 세상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밥과 국은 물론이고 반찬까지도 전자레인지에서 조리가 끝난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는 고등어자반까지 선보였다. 주부들이 부엌에서 할 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간편식 시장을 키우는 요인은 많다. 맞벌이 가정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전자레인지도 없는 집이 없을만큼 대중화됐다. 주 5일제로 인해 레저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간편식 시장을 성장시키는 요인이다. 이에 따라 제일제당.대상.오뚜기.동원F&B.풀무원 등 국내 식품회사들도 간편식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즉석밥 시장 고속 성장

3년 전부터 대중화하기 시작한 제일제당 '햇반'은 밥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만 돌리면 밥솥에서 만든 밥과 똑같은 밥이 완성된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1996년 처음 햇반이 나왔을 땐 '누가 밥까지 사먹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지만 99년 이후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 햇반의 매출은 약 5백억원 규모. 매년 50% 이상씩 급성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엔 농심에서도 '햅쌀밥'을 내놓고 즉석밥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농심은 이를 위해 1백10억원을 투자해 생산 라인을 설치했으며 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햅쌀밥을 알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농심측은 올해 매출 1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05년까지 5백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즉석밥 시장이 커지면서 제품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제일제당에서는 오곡밥.영양밥.흑미밥 등 다섯 종류의 즉석밥을 내놓았다. 농심은 '소고기국 햅쌀밥''미역국 햅쌀밥' 등 각종 국밥 제품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 즉석 국.즉석 반찬

된장국.순두부국.재첩국.추어탕.미역국.북어국.육개장…. 가까운 수퍼마켓에 가면 거의 모든 종류의 즉석국을 살 수 있다.

각종 반찬에 필요한 소스 제품도 많다. 생선 조림을 하고 싶지만 요리에 자신이 없다면 생선조림 소스를 사면 된다. 신선한 두부장국을 먹고 싶다면 두부장국 소스를 사다가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최근에 나온 국수 제품들은 국수와 소스를 한데 묶어서 판매한다. 오래 끓여야 제 맛을 내는 육수를 만들 시간이 없는 주부들을 위해서다. 최근에는 아예 요리가 완성된 상태로 나오는 제품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대상에서는 최근 일품 요리인 '돈부리'를 세 종류 출시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만 돌리면 일본식 쇠고기.닭고기.해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대상 측은 일본식 요리에 이어 이탈리아 요리.중국 요리도 전자레인지용 식품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제일제당은 '햇찬'이란 이름으로 자반고등어와 장어구이를 만들어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판할 예정이다. 오뚜기는 조리과정을 모두 처리해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곰탕.육개장 제품을 개발했다.

◇팽창하는 즉석식품 시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즉석식품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분석한다. 지금까지 즉석식품은 술 안주나 아이들 간식 정도로 인식돼 왔으나 집에서 밥을 해먹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제품의 맛이 개선되면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즉석 편의식품 시장은 연간 3조원 규모. 지난해에 비해 30% 가량 성장한 수치다.

대상 관계자는 "보통 일본의 생활 방식을 우리나라에서 약 5~10년 정도 시간차를 두고 따라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이미 즉석식품이 전통적인 식사 과정을 대신한 상태라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도 즉석식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뚜기 최광명 과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인들과 달리 요리에 투자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쉽고 빠르게 식사를 마칠 수 있는 간편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간편식시장 들끓는 건 전자 레인지·오븐의 힘

식품산업은 가전제품과 궤를 같이 하면서 발전한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간편식의 특징 중 하나는 전자레인지(사진)를 이용한 제품이 많다는 것. 1980년대 이후 보편화한 전자레인지는 현재 약 92%의 보급률을 보이며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됐다.

3분짜장.3분카레로 대표되는 레토르트 식품이 즉석 제품의 대표 주자로 인정받던 90년대에 비해 2000년대를 겨냥한 제품들이 주로 전자레인지 사용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가전제품의 발전이 식품시장에 영향을 미친 예로는 냉장고의 보급을 꼽는다. 70년대 보급되기 시작해 80년대 대중화한 냉장고는 아이스크림과 냉동만두.냉동 돈가스 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90년대는 냉동식품의 전성기로 냉동 스파게티.냉동 피자.냉동 떡갈비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식품이 냉장고 사용자를 위해 재가공됐다.

최근의 김치냉장고 보급이 공장 김치 산업에 일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전자레인지 이후에 식품시장에 변화를 가져올 가전제품으로 전기오븐을 꼽는다.

현재 전기오븐의 보급률은 20% 정도.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오븐의 시대를 대비한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제일제당에서는 최근 가루제품 '비스켓 믹스'를 내놨다. 물을 붓고 오븐에 넣기만 하면 비스켓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다.'뚜레주르'등 전문 빵집에서 사용하는 냉동 생지를 가정용으로 개발 중이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오븐이 대중화하면 베이커리 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가전제품은 식품산업의 시장성을 전망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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