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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학급회의 수준 대책”…온 국민이 ‘부동산 블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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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호 03면

부동산 허탕 친 4년

정부가 19일 전세 대책을 내놨지만 헛발질이란 비판이 많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본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정부가 19일 전세 대책을 내놨지만 헛발질이란 비판이 많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본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온라인에선 요즘 ‘코로나 블루(코로나19에 따른 우울증)’에 이어 ‘부동산 블루’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연일 폭등하는 집값·전셋값 탓에 좌절감에 빠진 무주택자가 겪고 있는 우울증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덜겠다고 정부가 19일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번 목표는 다락같이 오르고 있는 전셋값 잡기다. 하지만 시장에선 ‘24번째 오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4인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 전세 물건이 부족하다는데, 뜬금없이 호텔·상가·공장을 원룸으로 바꿔 임대하겠다고 나선 때문이다. 한술 더 떠 다세대주택을 대거 공급하겠다고 한다.

부동산 ‘24번째 오답’ 논란 #뜬금없이 호텔·상가→원룸 임대 #“차라리 부동산 정책을 포기하라” #국민 59% “내년에도 집값 뛸 것” #“정책 기조 바꿔 결자해지해야”

여권 인사는 정부 엄호에 나섰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매입임대주택을 둘러본 뒤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도 이날 자신의 방송에서 “(우리나라에도) 여인숙에서 1년, 2년 사시는 분들이 있었다”며 “그렇게 생각하니 뜬금없는 정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졸속 시행처럼 현상의 본질을 외면한 헛다리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심지어 ‘전세난에 겹친 전세 대책난’이란 조롱이 쏟아졌다. 여당 내에서도 정부 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야당은 “초등학교 학급회의 수준”이라고 조롱했다. 애초 시장에선 이번 대책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정부가 전세 대책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제발 가만히 있어라”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23번의 헛발질을 고려하면 그럴 법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부동산은 반드시 잡겠다”며 지금까지 23번의 대책을 내놨지만 성공은커녕 부작용만 키웠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312만원으로, 월간 단위로는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6억708만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4억원 올랐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아파트 전용면적 117㎡형은 2017년 5월 15억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25억원을 호가한다.

정부가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3년 6개월, 햇수로 4년 간 집중공격한 다주택자는 줄지 않고 되레 늘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 다주택자는 228만4000명으로 1년 전 219만2000명보다 9만2000명 늘었다. 2018년엔 7만3000명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 이후 증가폭이 더 커진 것이다. 다주택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15.9%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늘었다. 김진 통계청 행정통계과장은 “서울 강남권 다주택자의 비중이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전국적으로 다주택자 비중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전셋값이 집값을 다시 밀어 올리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셋째 주(16일 기준) 전국 아파트값은 0.25% 상승했다. 감정원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8년 6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최근의 전세값 상승이 23번의 집값 안정 대책과 임대차 2법 졸속 시행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라는 건 정부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여태 발표한 부동산 정책이 원래 목표한 바를 달성한 적이 없다”며 “차라리 부동산 정책을 포기하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정치로 시장을 이기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거나,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 등이다. 저금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거나, 언론이나 다주택자와 같은 시장 교란 세력 때문이라는 옹호론도 있다. 이유가 어찌됐든 분명한 건 23번의 대책을 내고도 여전히 집값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정부의 크나 큰 패착”이라고 인정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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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1년 6개월은 어떨까.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가 집값을 잡기 바라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내년에도 집값이나 전셋값이 뛸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1월 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향후 1년간 집값 전망을 물은 결과 59%가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내릴 것’이라는 응답자는 13%였다. 전셋값도 마찬가지다. 66%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고, 내릴 것이란 응답은 7%에 그쳤다. 전문기관도 상승에 무게를 둔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2021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전국의 집값이 1.04%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저금리, 풍부한 시중 유동성 등이 집값을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전국 전셋값 상승폭이 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더 높은 수치다. 연구원 측은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의 절반 수준인 데다 임대차 2법 시행으로 기존 전세 물건의 유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전셋값을 잡지 못하면 집값을 잡기는 더 어려워진다. 2016년 집값이 급등했던 것도 전셋값을 잡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아파트 전세가율(전셋값 대비 매매가격 비율)은 서울이 75%대, 경기도가 79%대에 달했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중저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부턴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재산세가 확 오르는 만큼 매물이 늘어날 가능성도 없진 않다. 특히 강남권 등 고가 주택이 밀집한 곳에선 세금 회피 매물 영향으로 집값이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결자해지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책 기조를 바꿔야만 정부 바람대로 집값·전셋값을 조금이나마 안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 왕숙·하남 교산 토지보상 지연…3기 신도시 2024년 입주 ‘글쎄’

금리 등 외부 요인을 제외하면 서울·수도권 집값·전셋값 안정화의 ‘키’는 3기 신도시다. 특히 전세난은 지금 이 상태라면 자칫 3기 신도시 입주 때나 돼야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과 동시에 도심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옥죈 탓에 내년부턴 신규 입주 물량이 확 줄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는 2024년 입주가 목표다.

그런데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초기 단계부터 돌부리에 걸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경기도시공사 등 3기 신도시 주요 시행사에 따르면 당초 12월 예정이던 남양주 왕숙1지구와 하남 교산지구 토지보상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질 전망이다. 보상가격을 두고 원주민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는 데다, 사업지 내 공장 이전 문제 등으로 잡음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왕숙1지구는 3기 신도시 중에서도 가장 넓은 889만㎡에 이른다. 내년 하반기 예정된 사전청약 물량도 2400가구로 가장 많다.

교산 역시 649만㎡로 사전청약 물량은 1100가구다. 왕숙1·교산지구의 토지보상이 늦어지면 정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내놓은 ‘8·4 서울·수도권 주택공급대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교산지구의 한 부동산개발회사 관계자는 “교산은 지장물 조사가 덜 끝난 데다, 유물이 많이 나오고 있어 사업이 더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지장물은 토지와 달리 일일이 조사해 보상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11월까지 조사를 마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원주민의 거센 반발도 넘어야 한다. 신도시 예정지 주변은 신도시 개발로 땅값이 확 뛰었지만, 예정지 원주민은 택지개발사업 고시가 이뤄진 2019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갈등이 커지자 하남시 등 지자체가 국회에 관련법상 보상 기준을 공시지가에서 실거래가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신도시는 아니지만 8·4 주택공급 대책에 포함된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유휴지도 주민 반대로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과천시는 최근 해당 부지를 ‘도시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곳에 4만여 가구를 짓는다는 계획이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신도시 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전셋값 상승세에 기름을 부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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