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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서민 고통 키우는 일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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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당과 정부가 당정 협의를 열고 내년 하반기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현재 연 24%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저소득·저신용 취약 계층의 과도한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책 의도다. 금융위는 20% 초과 금리 대출 이용자 208만 명의 이자 부담이 매년 4830억원 경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다. 여당 의원뿐 아니라 일부 야당 의원들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에 맞춰 법정 최고 이자율을 낮추겠다는 정책 방향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선한 의도’를 앞세워 시장의 현실을 살피지 않은 채 서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정책 의도와 달리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금융 취약 계층에 고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 최고금리는 2002년 연 66%로 처음 규정된 이래 몇 차례의 조치를 거쳐 지금 수준으로 떨어졌다. 법정 금리가 낮아질 때마다 저신용자에 대한 제도권 금융업체들의 대출 기피로 상당수 금융 취약 계층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났다. 수익성이 악화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저신용자들의 제도권 금융 이용이 더 어려워지는 일도 발생했다.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높은 금리와 가혹한 빚 독촉이다. 현재 대부업체조차 대출을 꺼려 불법 사채를 쓰는 금융 소외층이 한 해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정부도 이자율 제한으로 인한 ‘금융 난민’ 발생 가능성을 인정하고는 있다. 금융위는 법정 최고금리 4%포인트 인하로 3만9000명 정도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 확대, 개인회생제도 등 채무자 구제 확충 같은 보완책을 함께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도 보완책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간에서는 이번 조치로 발생하는 금융 난민을 6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정부 예상치의 15배나 된다. 학계에서는 현재 6000여 개 수준인 대부업체 상당수가 금리 인하에 따른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그 결과 저신용자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의도와는 정반대로 약자를 괴롭혔던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서민 일자리를 줄였고, 분양가 상한제는 ‘로또 분양’ 광풍을 낳았다. 전세 대란을 불러일으킨 주택임대차보호법도 대표적 사례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도 선의만 앞세우기보다는 더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검토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