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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진영논리에 따라 집회에도 ‘코로나 잣대’ 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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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진보단체의 지난 14일 대규모 집회는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명을 웃도는 엄중한 상황에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물론 청와대·여당·지자체·경찰의 대응은 이전 보수단체 집회 때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이 때문에 진영논리에 따라 방역 원칙이 오락가락하고 이중잣대를 들이대 국민을 편가르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수 집회 경고한 질병청장, 진보 집회엔 침묵 #똑같은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산 책임 따져야

서울시의 경우 8월 21일부터 광화문 등 도심 집회를 전면 금지했고, 10월 12일부터는 100인 이상 집회 금지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보단체는 여의도 등지에서 99명까지 ‘쪼개기 집회’ 신고로 대응했다. 민주노총 등 진보단체가 집회를 강행한 지난 14일 신규 확진자는 전날 자정 기준으로 205명이었다. 267명이었던 9월 2일 이후 가장 많이 발생해 방역에 비상등이 켜진 날이었다. 앞서 보수단체가 정부 실정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던 8월 15일(당시 거리두기 1단계)은 166명, 추석 특별방역 조치 기간(거리두기 2단계)에 포함된 10월 3일과 9일은 각각 75명, 54명이었다.

몇 차례 바뀐 방역 당국의 거리두기 단계와는 상관없이 동일한 기준인 확진자 숫자를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엄중해 보이지만 진보단체는 무시했다. 물론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 스스로 원칙을 의심받는 언행을 쏟아냈다.

코로나 실무 책임자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대응부터 과거와 이번이 눈에 띄게 달라 보였다. 8월 14일 정 청장(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도심 집회 등으로 코로나가 증폭돼 발생하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는 그런 절박한 상황”이라며 집회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전국 민중대회 준비위원회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대규모 ‘11·14 집회’를 예고했지만 정 청장은 마이크 앞에 섰던 지난 2일을 비롯해 이에 대해 직접적인 자제나 경고를 발신하지 않았다.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선 “반사회적 범죄”라며 “어떤 관용도 없다”고 발끈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단체에 대해선 “집회 자제” 등 온건한 메시지를 냈을 뿐이다. “광화문 집회 주동자들은 살인자”라고 극언했던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번엔 태도가 달라졌다. 경찰은 개천절과 한글날의 보수단체 집회 때는 과잉대응이란 비판을 받을 정도로 경찰버스 500여 대를 동원해 차 벽을 쌓고 철제 울타리를 쳐서 봉쇄했다. 이번엔 국회 앞에 버스 180대를 세웠지만 느슨하게 대응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이중잣대로 불신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번에도 철저한 추적 검사와 구상권 청구 등 같은 기준으로 진보 진영에도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따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