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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으면 '동공지진' 오는 스가…日정치권 "한심""꼴불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국회에 출석해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보좌진이 써준 종이를 그대로 읽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답변 스타일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 내각제 정치 체제에서 문자 그대로 ‘대독’ 총리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의미다.

국회 데뷔전서 민감 질문에 #보좌진 써준 종이 답변 의존 #야당 "한심", 여당까지 "꼴불견"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보다 못하다’라거나 ‘꼴불견이었다’는 등의 이례적인 표현을 인용하며 스가 총리를 신랄한 어조로 비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 사안 관련, 고이케 아키라(小池晃) 공산당 서기국장의 질의를 받은 뒤 보좌진이 건넨 종이를 보고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캡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 사안 관련, 고이케 아키라(小池晃) 공산당 서기국장의 질의를 받은 뒤 보좌진이 건넨 종이를 보고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캡처]

16일 마이니치신문은 “스가 총리가 최근 국회 예산위원회 질의로 취임 후 처음 일문일답 형식의 논전(論戦) 데뷔전을 치렀다”며 “그 결과 미덥지 않다는 평가가 여야 모두 압도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스가 총리를 향한 불안한 시선은 임시국회가 개의한 지난달 26일 예산위원회부터 시작됐다. 당시 스가 총리 뒤에서 보좌진이 몸을 내밀어 종이를 건네주고 펜으로 읽어야 할 부분을 가리키는 광경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이 매체는 “아베 전 총리는 최소한 이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며 “조금 놀라웠다. 총리로서 괜찮은 건지 걱정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지난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선 스가 총리의 자질을 놓고 의구심이 더욱 증폭됐다. 최근 정부 정책에 비판적 견해를 밝혀온 학자에 대해 스가 총리가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을 거부한 사안이 집중적으로 다뤄졌을 때다.

고이케 아키라(小池晃) 공산당 서기국장 등 야당 의원들은 전날(5일) 스가 총리가 임명 거부와 관련, “정부와 사전 조율이 있었다”고 답변한 것을 문제 삼고 “어떤 조율이 있었냐”며 연달아 따져 물었다. 이에 계속 말문이 막힌 스가 총리가 불안한 표정으로 보좌진이 건넨 종이를 받아들고 그제야 “인사에 관한 프로세스는 대답이 제한된다”고 나지막이 읽어 내려갔다는 것이다.

즉시 야당 의원석에선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여당 의원들도 “그렇게 두꺼운 자료를 들고 오더니 말끝도 명확하지 못하다. 꼴불견이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고이케 서기국장은 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한심하다. 자신의 말로 정치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총리 역할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오후 중의원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 세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오후 중의원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 세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전 총리와 스가 총리를 비교하면서 스가 총리가 전임자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베 전 총리가 ‘식사 논법(ご飯論法)’으로 논란을 키운 사례를 예로 들었다.

아침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쌀밥은 안 먹었다”고 대답하면서 논점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아베 전 총리는 국가 예산으로 진행되는 ‘벚꽃을 보는 모임’ 행사에 후원회 관계자들을 초청한 일을 놓고도 이런 답변을 내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아베 전 총리가 감정적인 언사로 궁지에 몰린 일을 보고 스가 총리가 말을 더욱 아끼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모리토모학원 이사장 부부가 아베 전 총리 부부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학교 용지로 쓸 국유지를 감정평가액보다 싸게 매입했다는 이른바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이때 아베 전 총리는 “우리 부부가 관여한 게 드러나면 총리직도, 의원직도 모두 그만두겠다”라고 공언했고, 결과적으로 재무성 직원이 자살하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2018년 3월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모리토모 사학스캔들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2018년 3월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모리토모 사학스캔들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마이니치신문은 이 같은 화법이 스가 총리에게 결국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아베 전 총리가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확실한 지지층이 있었던 반면, 스가 총리에겐 핵심 지지층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설명 없는 답변’을 내놓는 스가 총리의 스타일이 계속되면 또다시 지지율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실제 스가 총리로선 무당층을 내각 지지세력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학술회의 임명 거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총리의 태도에 대해 무당층에서 상당한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설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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