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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땅에 떨어진 낙엽은 쓸쓸함 대신 새 삶을 노래한다

중앙일보

입력

여기저기 울긋불긋 단풍이 들더니 어느새 꽤 쌀쌀합니다. 가을이 깊어지며 옷깃을 여미거나 목도리가 필요한 날씨가 됐죠. 아직 거미·등에 같은 곤충들은 눈에 띄지만 벌과 나비는 잠잠해진지 오래고, 바쁘게 먹이를 모으던 다람쥐나 청설모도 겨울을 날 채비를 합니다. 조만간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거나 땅속·은신처로 들어가 추위를 피할 겁니다. 몸집이 작은 생명체 대부분이 땅속이나 나무껍질 속, 낙엽 밑에서 겨울을 보내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8 낙엽

식물들도 겨울을 준비합니다. 풀은 줄기가 시들해지며 죽어가고 살아남은 땅속 뿌리·씨앗으로 이듬해를 준비해요. 나무도 겨울 휴식을 위해 잎을 떨어뜨리죠. 떨어지는 잎이라 ‘낙엽(落葉)’이라고 해요. 새봄에 돋아서 열심히 자라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 열정적으로 광합성을 해서 열매를 살찌우고 줄기·뿌리에도 양분을 만들어주던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서 죽어갑니다. 낙엽을 보면 쓸쓸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보면 제 할 일을 하고 떠나는 길이니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나뭇잎의 생은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낙엽은 대부분 땅에 떨어져 많은 생명체들의 도움으로 분해돼 건강한 흙으로 다시 태어나 숲속 생명을 길러냅니다.

누가 흙을 만들까
땅에 떨어진 낙엽은 비·눈·얼음 등에 의해 큼지막하게 쪼개집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밟으면서 부서지죠. 이후 토양 속 작은 생명체들이 분해하고 먹이로 삼으며 흙으로 돌려보냅니다. 흙 1g에 세균이 수십억 마리가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흙 1㎡에는 척추동물 1마리, 달팽이·민달팽이 100마리, 지렁이 3000마리, 곤충·거미 5000마리, 윤형동물·완보동물 1만 마리, 톡토기 5만 마리, 진드기 10만 마리, 선형동물 500만 마리 등이 산다고 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죠. 숲속 토양엔 추가로 두더지·지네·노래기·꼽등이·장수풍뎅이 애벌레·공벌레 등이 살고 이들 중 여럿이 낙엽을 주식으로 합니다. 이런 생명체들이 먹고 배설하면 그것 자체가 흙이 되기도 하고 이후 버섯·미생물들이 분해합니다. 만약 버섯이 숲에 없다면 죽은 나무·잎들이 분해되지 않고 쌓여있을 겁니다. 흔히 버섯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숲속 생명들이 죽고 살아가는 순환의 고리에 큰 역할을 해요.

지렁이가 숲을 키운다  
건강한 숲속 토양을 만들어내는 선수 중 가장 눈에 띄는 생물을 꼽으라면 단연 지렁이죠. 숲·공원 및 화단을 관찰하면 몽글몽글하게 흙 탑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어요. 바로 지렁이 똥입니다. 분변토라고도 하죠. 지렁이는 한자로 지룡(地龍)이라고 부르다가 지룡이-〉지롱이-〉지렁이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옛날 사람들은 지렁이 몸이 길쭉하니 흙 속 용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학자들은 보통 1에이커(약 4000㎡)를 기준으로 지렁이 개체수를 기록합니다. 지역 및 토양의 상태에 따라 적게는 2만 마리에서 많게는 800만 마리가 있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지렁이 1마리가 연간 분변토 30g을 만든다고 하니 대략 100만 마리라고만 해도 300만g 즉, 30톤에 해당하는 분변토를 만드는 거죠. 1㎡로 환산하면 연간 7.5kg의 분변토를 생산하는 셈이죠.

분변토는 식물이 흡수하기 좋고 미생물이 살기 좋은 흙이 됩니다. 지렁이 몸무게가 대략 0.4g인데 먹이도 하루에 0.4g 먹는다고 해요. 자기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먹이를 먹는 엄청난 대식가죠. 지렁이는 숲속에서 한 계절에 떨어진 낙엽을 모두 다 먹어치울 수 있다고도 합니다. 지렁이가 얼마나 많은 낙엽을 흙으로 바꿔주는지 상상이 가나요?

지렁이는 또 땅을 파고 다니면서 흙을 갈아엎는 역할도 합니다. 다윈도 1000㎡에 살고 있는 지렁이들이 1만kg이나 되는 흙을 땅속에서 퍼 올린다고 추정하며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지렁이는 몸을 구성하는 물질의 56%가 단백질이라서 죽어서도 거름이 됩니다. 한 마리당 10mg의 질소도 만들어낸다고 하니 흙을 위해 태어난 생물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무는 재활용 전문가  
나무는 생각보다 많은 나뭇잎을 매달고 있어요. 다 자란 나무 한 그루는 대략 2만~10만 장, 아주 커다란 나무는 100만 장 가까운 나뭇잎을 달고 있죠. 차지하는 땅의 면적보다 달고 있는 잎의 면적이 훨씬 넓은 나무는 효율적으로 땅을 사용해요. 자신이 자라는 땅에 한때 양분을 만들던 잎을 떨어뜨려 거름을 만들고 건강해진 토양에서 다시 양분을 흡수해서 잘 자라고 다시 또 낙엽을 떨어뜨려 토양을 건강하게 하는 삶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나무는 수억 년 전부터 재활용의 모범이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낙엽 지는 가을 쓸쓸해하지만 말고 떨어진 잎이 낙엽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용기를 얻고, 땅속 수많은 생명체가 건강한 흙을 만들기 위해 내 발밑을 잘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며 위로받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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