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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메이드 인 아메리카' 외치자···현대차 울고 배터리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달 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미래차 전략 토크쇼'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희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달 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미래차 전략 토크쇼'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미국 정부의 전기차 확대 정책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에 맞춰지면서 국내 기업 간 상황이 갈리고 있다. 미국에 전기차 생산라인이 없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셈법은 복잡해진 반면, 이미 현지 공장을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은 한층 유리한 입장에 놓였다.

‘100만개 일자리’ 위한 친환경 

11일 바이든 정부 인수위 홈페이지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1차 임기 내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인프라에 2조 달러(약 2200조원)를 투자해 신규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2050년까지 배출가스 순제로(net zero) 달성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의 당선 소식에 국내 친환경 관련 기업 주가도 일제히 올랐다.

문제는 이 모든 친환경 정책의 목표가 '미국내 제조업 재건과 이를 통한 미국 경제 살리기'라는 데 있다. 전기차 관련 공약을 살펴보면 ▶미국내 생산·고용확대 ▶핵심 공급망의 미국 복귀(리쇼어링) ▶미국에서 제조한 배터리 기술 활용 등이 눈에 띈다. 전기차 판매와 직결되는 세액공제와 보조금 지원 등도 미국 내 생산 제품에만 이뤄질 전망이다.

바이든 당선인 전기차 등 친환경차 주요 공약.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바이든 당선인 전기차 등 친환경차 주요 공약.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美 전기차 시장 내년 70% 성장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대응 시계가 숨 가쁘게 돌기 시작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 기업이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수출 240만대 중 36.8%인 88만4000대가 미국으로 향했다. 전기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친환경차 전문매체인 클린테크니카는 바이든 정부의 환경규제와 보조금 등에 힘입어 내년 미국의 전기차 판매가 올해보다 7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공장이 있지만, 전기차를 생산하진 않는다. 전기차는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취임 보름여 만인 지난달 30일 울산공장에서 노동조합과 만나 전기차 등 미래 차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노조는 국내 투자와 고용 보장을 요구했고 정 회장은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 내 판매를 늘리기 위해 현지 전기차 생산라인을 만들려 해도 노조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에 터 잡은 한국 배터리 공장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향후 미국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경우 즐거운 비명이 이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생산’ 혜택을 받을 곳이 사실상 한국 기업밖에 없다. 지난 9월 월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인 LG화학은 미시간주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고,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의 대표 완성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오하이오주에도 공장을 짓고 있다. 4위인 SK이노베이션은 3조원을 들여 조지아주에 공장 2곳을 지어 2022년(1공장)과 2023년(2공장)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 배터리 공장. 사진 SK이노베이션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SK 배터리 공장. 사진 SK이노베이션

2위인 중국 CATL의 추격이 매섭지만, 바이든 정부 역시 불공정 보조금 등을 이유로 중국과의 갈등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당장 중국 기업의 미국 공장 건설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3위인 일본 파나소닉은 자국 기업인 도요타 납품만으로도 빠듯한 상태다.

현대차, 미국 전기차 생산으로 가나 

업계에선 그동안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해 온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당분간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과실을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바이든식 ‘자국 우선주의’에 부딪힌 현대차의 경우 결국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곧 내연기관의 종말이고, 현대차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은 한국에서 조달받되 나머지 차체 조립 등은 미국 공장을 활용할 것이란 얘기다. 고 센터장은 “현대차가 기존 미국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바꿀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내년 초 나오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통한 전기차 생산이 얼마나 성공적인지가 현대차의 미국 전기차 시장 대응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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