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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비, 당신은 얼마까지 낼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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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이어지는 택배 노동자 사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자조합이 ‘죽음의 기업’이라며 공격에 나섰고 1위 사업자인 CJ대한통운은 택배 분류인력을 늘리기로 하는 등 고개를 숙였다(10월 22일). 그러자 중소 택배사도 사과의 뜻을 내놓으며 따라왔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다. 택배노조는 분류작업과 인력투입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슈를 재점화했다. 싸움을 거는 택배노조도, 변명이 긴 택배사도, 입장이 애매한 택배 대리점도 대책을 내놓으면서 핵심은 비껴간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택배비 현실화가 유일하다.

현재 택배비는 터무니없이 싸다. 평균 택배비 2200원에서 택배기사가 40%를 가져가도 고작 880원 벌이다. 유류비 등을 떼고 나면 676원이 남는다. 그렇다면 택배 기업이 많이 남기나. 그것도 아니다. 고작 3%인 70원을 이익으로 남긴다. 대형 쇼핑몰과 기업 물량을 확보하려는 경쟁으로 2000년 3500원 하던 택배 단가는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단가 후려치기로 생기는 손해를 물량을 늘려 때우려고 하니 배송은 시간 전쟁이 된다.

기업택배 배송비 2200원의 수수료 구성

기업택배 배송비 2200원의 수수료 구성

덕분에 대한민국은 택배 소비자의 천국이 됐다. 쇼핑 플랫폼 배송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연필 한 자루도 택배비 없이 주문 다음 날 새벽에 바로 받아 볼 수 있는, 놀랍도록 편리한 ‘택배 강국 코리아’는 택배사의 물량 확보 경쟁에 플랫폼 사업자의 사용자 확보 전쟁이 더해진 결과다. 한 달에 2900원만 내면 시도 때도 없이 배송을 시킬 수 있다는데 소비자가 자주, 많이 주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근 일고 있다는 ‘새벽 배송 주문하지 않기’ ‘택배 기사 응원하기’ 캠페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사회가 아픈 곳을 주목하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아예 없진 않겠다. 하지만 택배 기사를 처량한 존재로 보는 ‘응원’과 ‘착한 소비’ 캠페인에 반대한다. 물건을 문 앞에, 그것도 즉시 가져다주면 상응하는 정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소비자가 인정해야 한다. 택배비를 올리면 논의에서 제외된 열악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일명 까대기 인력)의 노동조건까지 개선할 수 있다. 물류시설 개선에 대한 투자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단가 문제 앞에선 택배사도, 택배노조도, 배송 경쟁을 벌이는 기업 모두 입을 다문다. 소비자는? “서민에 부담”이라는 반발부터 나올 것이 자명하다. 이 글 제목에 자문자답하자면 5000원까지 낼 수 있다. 그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수고라고 생각한다.

전영선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