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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진짜..청와대로 향하는 검찰 원전수사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원전감사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제왕적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원전감사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제왕적이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임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감사원에서 검찰 보낸 7000페이지 수사참고자료 내용 알려져 #여전한 구중궁궐 제왕적 대통령 모습..결국 책임도 대통령 몫

1.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검찰수사가 심상찮습니다.

지난 9일자 코멘터리(윤석열 ‘살아있는 권력’은 대통령인가)에서 심각성을 예고했는데, 불과 이틀만에 ‘진짜 대통령을 겨냥하는구나’라는 심증을 굳히게 됩니다.

예상대로 감사원에서 검찰로 보낸 ‘수사참고자료’가 폭탄입니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감사결과를 지난달 200페이지 분량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에 보낸 수사참고자료는 무려 7000페이지. 관계자들의 육성진술까지 자세히 적혀있어 검찰이 놀랐다고 할 정도입니다.

2.
참고자료에 담겨있던 내용들이 11일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개자료에서 이해되지 않던 빈칸들이 메워지는 느낌입니다. 정책방향이 뒤집힌 며칠간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보면 정황이 그려집니다.

-2018년 3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월성1호기 운영에 대한 검토결과를 산업부에 보고.
내용은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수명연장 조치 이후) 허가받은 2.5년간 더 운영한뒤 영구폐쇄.’

-4월 2일: 청와대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이 ‘원전 외벽에 철근이 노출돼있다’는 글을 내부 전산망에 올림.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보고 ‘(월성1호) 가동중단 언제 결정하느냐’고 말함.

-청와대 원전담당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이 산업부 파견 행정관에게 ‘월성1호 즉시폐쇄하겠다는 내용을 (산업부 장관 재가 받아) 보고해달라’고 지시. 행정관은 산업부에 전달.

-4월 3일: 산업부 담당과장이 3월에 협의한 방안(2.5년간 연장 후 영구폐쇄)을 백운규 장관에 보고.
장관이 과장에서 ‘너 죽을래’라고 화내면서‘(청와대 요구대로) 즉시 가동중단하는 재검토안을 보고하라’고 지시.

-4월 4일: 담당과장이 ‘즉시폐쇄’방안을 보고하자 장관이 ‘진작 그렇게 하지’라며 ‘이대로 청와대 보고하라’고 지시. 청와대 보고.

-한수원에 방침변경 통보하면서 ‘즉시 가동중단 결론 나오지 않으면 우린 옷벗는다. 한수원은 아무 일 없을 줄 아느냐’고 압박.
(한수원이 ‘즉시폐쇄’로 결론을 바꾸어 보고해달라는 요구.)

-4월 10일: 한수원은 결론을 바꾸기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외부 회계법인에 ‘경제성검토’용역 맡김.

-6월 11일: 삼덕회계법인은 한수원의 요구에 맞춰 수차례 평가기준을 바꿔‘즉시폐쇄가 맞다’는 결론의 보고서 확정.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는 이 보고서에 근거해 ‘즉시폐쇄’ 의결.

3.
결론은 ‘2년 더 운영하려던 월성1호기를 대통령의 질문 한마디에 당장 폐쇄했다’입니다.
그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나 검토는 완전히 무시되고 뒤집혀졌습니다. 해당 공무원이 감사과정에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할 정도로. 물론 백운규 장관 등 책임자들은 ‘그런 사실 없다’고 부인했답니다.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대통령 한마디에 관료들이 완전 오버한 거죠. 임금님 한말씀에 궁궐 내시와 승지부터 육조판서까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촛불정부니 뭐니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구중궁궐 속 제왕입니다.

4.
이러니..수사는 결국 대통령을 향하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이 과연 뭐라고 말했는지. 정말 궁금해 물어봤는지, 아니면 질책성으로 물었는지..등등.

물론 현직 대통령의 책임이 명확히 드러나긴 어렵겠죠. 이미 많은 자료들은 폐기되었습니다. 장관은 부하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승지나 판서가 감히 임금에 누를 끼치는 입놀림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통령은 임기가 있습니다. 제왕처럼 누렸던 권력이 퇴임하면 다 부담이 됩니다.

5.
불쌍한 공무원이라고 책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영혼이 없다고 하더라도 불법부당한 지시는 거부해야 맞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시대착오적 행태가 아직도 살아움직이는 건 관료조직이 떠받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정권 눈치보다가 정권 바뀌면 적폐 취급 당하는 수모를 이젠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 법무부 선거범죄과장은‘(바이든 당선시킨) 부정선거 조사하라’는 불복 트럼프 지시에 사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