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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노트] 기관들이 디지털 금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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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소냐’s B노트] 한동안 박스권에 갇혀 있었던 비트코인 가격이 최근 한 달 새 파격적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10월 중순까지 1만1000달러대에 머물렀던 비트코인은 최근 1만5800달러까지 올라 2018년 초 활황기 이후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변동성도 커진 상태여서 자고 일어나면 또 얼마나 올라 있을지 기대하게 됩니다.

#비트코인 가격, 올해만 2배 올랐다 

비트코인 가격은 올 들어 116% 올랐습니다. 이전 고점을 70% 따라잡은 셈입니다. 과거에는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만 오르면 알트코인도 줄줄이 상승하는 장면이 뒤따랐습니다. 그 중엔 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탓에 변동성 영향을 크게 받아 비트코인보다 더 오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예전과 다릅니다. 이더리움과 XRP 등은 전고점보다 여전히 70~90%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 비트코인만 나홀로 질주를 하고 있는 걸까요.

업계는 이번 상승장이 기관들이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기관들이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과 그 밖의 알트코인이 다른 노선을 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확신하려면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어떤 기관이, 얼마나 많은 양의 비트코인을 사들이고 있는 걸까요? 

#페이팔 구매 서비스, 비트코인 상용화 빨라진다

주요 이슈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3억4600만 계좌를 보유한 글로벌 결제 업체 페이팔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일부 암호화폐의 매매, 결제 서비스를 론칭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암호화폐 업계가 올해 반감기 이후(혹은 반감기를 뛰어넘어) 가장 주목할 만한 초대형 이슈입니다. 가치저장수단에만 국한됐던 비트코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사용 단계로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을 간편송금하거나, 매장에서 화폐처럼 쓸 수 있게 됩니다. 업계는 페이팔을 시작으로 향후 더 많은 금융기관, IT 플랫폼에서 비트코인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국의 억만장자이자 우주탐사 기업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을 이끄는 리처드 브랜슨은 최근 트위터에서 “페이팔 소식 이후 메이저 은행들은 비트코인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다.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페이팔은 비트코인 말고도 이더리움ㆍ비트코인캐시ㆍ라이트코인 등 알트코인도 지원할 예정입니다만, 전통 금융 업계에선 비트코인만이 유일무이한 디지털 금으로 자리잡은 만큼 파급 속도와 영향력 측면에서 알트코인과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 들어 보다 과격해진 미국 암호화폐 투자 펀드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6~7년간 꾸준히 비트코인을 매입해온 그레이스케일은 지난 3분기에만 25억달러를 비트코인에 쏟아부었습니다. 이는 지난 7년 간 투자액보다 두 배 많은 금액입니다. 현재 그레이스케일이 운용 중인 비트코인트러스트(GBTC) 규모는 76억달러로 4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그레이스케일의 주 고객은 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데다 해킹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는 것보다 GBTC를 훨씬 선호합니다. 그레이스케일의 운용자금이 빠르게 불어난다는 건 그만큼 기관들의 비트코인 선호 심리가 커졌다는 뜻입니다. JP모건은 기관들의 GBTC 수요가 금 ETF(상장지수펀드)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이더리움 트러스트(11억달러)나 비트코인캐시 트러스트(4600만달러)는 비트코인에 한참 못 미치는데, 이 역시 알트코인 대비 비트코인에 대한 기관들의 기대가 압도적으로 크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직접 사 모으는 기관도 늘고 있어

페이팔과 그레이스케일은 사람들에게 비트코인 시장 진입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다면 모바일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비트코인을 기업의 자산화 했다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지난 8월 이 회사는 2만1454(2억5000만달러)개 비트코인을 사들인 데 이어 다음달 1만6796(1억7500만달러)개를 추가 매입했습니다. 회사는 2만개 이상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위해 7800여곳의 장외거래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매입한 비트코인은 모두 콜드월렛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 상태입니다.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 CEO는 개인적으로 1만7000개 가량 비트코인을 평단가 9800달러에 보유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의 비트코인 투자는 투기나 위험 헤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비트코인을 100년 장기 보유할 계획이다. 비트코인은 금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며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2017년부터 3년간 사업으로 거둔 수익보다 지난 3개월간 비트코인 투자로 얻은 수익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요. 2013년 비트코인에 사망 선고를 내리기까지 했던 세일러 CEO가 낙관론자로 태도를 바꾼 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밖에도 10월 모바일 결제 업체 스퀘어가 4700개가량(약 5000만달러) 비트코인을 기업 자산으로 매입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자산운용사 스톤리지홀딩스가 1만개(약 1억1400만달러) 이상 비트코인을 사들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기관이 가진 비트코인은 얼마?

그렇다면 기관이 보유한 비트코인 총수량은 얼마나 될까요. 분석 플랫폼 코인트레저리스에 따르면 11월 9일 기준 23개 기관이 81만2054개 비트코인(약 124억달러)을 보유 중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전체 비트코인 총량의 3.87%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23개사는 크게 상장사, 민간 기업, ETF 유사 상품 등 3가지 카테고리로 나뉩니다. 먼저, 앞서 언급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스퀘어 등을 포함한 15개 상장사는 6만7000BTC(약 10억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록원과 테조스 재단, 스톤리지홀딩스 3개 민간기업은 17만6000BTC(약 25억달러)를, 그레이스케일 등 ETF 유사 상품 제공 업체는 57만BTC(약 80억달러)를 보유 중입니다. 현재로선 그레이스케일에 힘입어 ETF 유사 상품 규모가 가장 크고, 상장사의 비트코인 보유량이 가장 적지만 추후에는 이 같은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습니다. 기관들이 비트코인 투자상품 대신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비트코인의 최대 난관이었던 규제 불확실성도 지금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미국은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우리나라나 일본도 허가 받은 업체에서 세금 내고 거래한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규제 강도가 센 중국에서도 비트코인을 사유 재산으로 인정한 판례가 존재합니다. 알트코인은 몰라도 비트코인만큼은 전세계 제도권 진입에 가까워진 현 시점에서 기관들은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에게 기회인가, 위기인가

기관의 진입은 그간 비트코인을 돈세탁, 불법거래 수단으로만 여겼던 대중의 인식을 바꿔줄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낙관적입니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의 암호화폐 사용 경험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가 1000~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들어 암호화폐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비율은 일본(4%)ㆍ독일(6%)ㆍ미국(7%)ㆍ중국(8%) 등으로 대중화까지는 거리가 먼 상황입니다. 국민 대다수는 비트코인을 투기나 불법적 용도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관들의 진입이 가시화하면서 인식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페이팔처럼 비트코인을 결제나 거래 시스템에 입히는 시도야말로 즉각적인 효력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기관의 진입이 당장은 호재일지 모르나 멀리 봤을 때 오히려 위기일 수 있다고 관측합니다. 기관들의 비트코인 점유율이 늘어날수록 개인 투자자들의 입지는 좁혀질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비트코인의 특징 중 하나는 희소성입니다. 총 발행량인 2100만개를 누가 먼저 가지느냐가 관건입니다. 아직은 기관 비중이 적고, 대중의 인지도가 낮아 문제가 안 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이 비트코인 시세에 따라 사고팔기를 반복할 동안 기관들은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 두며 가치를 불려가고 있습니다. 다음 반감기인 2024년이 되면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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