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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퇴장…"방패 잃었다" 스트롱맨 전성시대 막 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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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당선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닮은꼴인 스트롱맨(strongman) 지도자들이 전성시대를 누렸다. 브라질·터키·러시아·헝가리·필리핀 등이 대표적인 국가다.

4년이 지난 현재, 재선에 도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패색이 짙어졌다. 그의 닮은꼴인 스트롱맨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각국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미 대선 결과를 지켜봤다.

지구촌의 스트롱맨들은 자유민주주의 법·제도를 타격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지구촌의 스트롱맨들은 자유민주주의 법·제도를 타격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브라질, 터키 "바이든 시대 오면 관계 악화할 듯" 

스트롱맨들에게 트럼프는 '고마운 존재'였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트럼프는 규범을 무시하고, 반대파를 탄압하고 지배 권한을 늘리려 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그들에게 공동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트럼프 바라기'였다. 그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좋겠다"면서 "재선에 성공하면 취임식에 참석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참모들이 트럼프 재선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야 한다고 충고했음에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트럼프의 패색이 짙어지고 선거에 불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라면서 태세 전환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3월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3월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오른쪽)과 정상회담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는 대립각을 세웠다. 바이든 당선인이 자국의 아마존 삼림 문제를 건드렸다는 이유에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바이든이 미국 대선 TV토론에서 아마존 삼림을 보호하는 대가로 브라질에 200억 달러(23조원)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심각한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했다"고 썼다.

그는 "과거 브라질에서 집권했던 좌파 성향 대통령들과 달리 나는 우리 영토와 경제에 대한 위협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바이든 당선인을 강하게 비판했다. 아마존 개간 사업을 서두르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기후 온난화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은 눈엣가시였다.

포린폴리시(FP)는 바이든이 환경·인권 문제 등에서 보우소나루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여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FP는 "바이든은 당선 후 트럼프의 현 정책을 개혁할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의 접근법을 지지해 온 보우소나루와의 관계를 긴장시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가운데)과 지난해 12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가운데)과 지난해 12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도 트럼프 때와는 다른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시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켰다. 이 덕에 터키는 시리아의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트럼프 집권 기간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로부터 방공 미사일 시스템(S-400)을 도입했다. 그러나 바이든이 나토 재정비에 나서면 터키의 '양다리 정책'은 더는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같은 나토 회원국으로서 에르도안 정권과 지나치게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배려한 트럼프 정권과 달리 바이든은 미국 의회에 발맞춰 강경한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에르도안 총리를 '독재자'라고 불렀던 바이든 당선인은 터키 내 인권과 민주주의 약화를 강경하게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재선 실패는 에르도안에게 있어 방패를 잃는 것"이라 보도했다.

"시진핑 스트롱맨 시대는 여전..2035년 장기집권 포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의 퇴조와 관계없이 스트롱맨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9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통해 2035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틀을 다졌다.

5중 전회에서 시 주석은 2035년 전망을 제시하면서 "시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시 주석은 장기 집권에 더해 절대 권력까지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니치는 2년 뒤인 20차 당 대회에서 과거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맡았던 '당 주석' 자리를 되살린 뒤 시 주석 본인이 취임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공격(때리기)'이 여전할 것으로 보고 대비해왔다. 중국 글로벌 타임스는 3일 "양국 관계가 다시 좋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도 "지난 4년간 미국의 대중 정책을 통해 미국이 중국을 억압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푸틴이 진짜 원하는 건 미국의 혼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는 어떤 미국 대통령과도 함께 일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여유를 보였다.

푸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당선인의 차남 헌터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어떤 불법적인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선을 그었다. 로이터통신은 "푸틴이 바이든의 비위를 맞추려는 시도로 보이는 대목이었다"고 평가했다.

푸틴이 트럼프의 퇴장을 은근히 바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 입장에선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적어도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보다 더 예측 가능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물러나게 되면서 푸틴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강대국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외신들은 "푸틴이 사실상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미 대선 결과로 미국이 내부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지는 것이다"고 보도했다. 한편 푸틴은 건강 상의 이유로 조만간 은퇴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영국 더 선 등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모습. [중앙포토]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유일한 유럽 지도자였던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를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정부가 언제든 계엄령에 준하는 통제 조처를 내릴 수 있게 하고, 사법부와 언론을 장악해 '빅테이터(빅토르+독재자를 뜻하는 '딕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 역시 대표적인 스트롱맨 리더십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 역시 대표적인 스트롱맨 리더십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대외적으로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조용히 트럼프가 없는 세계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 수도 마닐라의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 수도 마닐라의 대통령궁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필리핀 두테르테 "건강 문제가 복병" 

트럼프 재선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의 건강문제로 고민 중인 스트롱맨도 있다. 오는 2022년 대선을 앞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여러 질환을 앓고 있다고 디플로맷이 보도했다. 디플로맷은 두테르테를 '가장 약한 스트롱맨'이라고 보도했다.

두테르테는 7년 전 오토바이 사고 이후 잦은 두통을 겪기 시작했고, 현재는 척추 질환을 완화하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 중이라고 알려졌다. 디플로맷은 "필리핀 대통령궁이 대통령 건강에 관해 공개를 거부해 대통령의 진료기록 공개를 촉구하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와 찰떡 공조를 과시했던 '스트롱맨'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물러나게 한 것도 건강문제였다. 아베는 올 9월 건강상 이유(궤양성 대장염 재발)로 총리직을 그만두면서 가장 먼저 트럼프에게 사임 인사를 했다.

※스트롱맨이어도 트럼프와 원수지간?

스트롱맨 성향임에도 트럼프와 척을 진 인물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마두로 정권이 인권 탄압과 마약 범죄 등을 저지르고 있다며 강도 높게 제재했다. 미국은 마두로 대신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 정상으로 인정한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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