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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이돌 콘서트 예매 뺨치는 ‘K화분’ 구매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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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정아의 식(植)세계 이야기(6)

한때 월요일 새벽 5시를 잠 설치며 기다린 적이 있다. 열심히 모으던 덴마크 도자기 그릇 때문이었다. 이베이에 올라온 그릇 경매에 참여하면 낙찰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유럽 현지시각으로 일요일 밤이라 한국시각으로는 새벽인 경우가 많았다. 예상 금액대에서 오랫동안 원하던 그릇 모델을 낙찰받았을 때 로또 3등쯤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최근 식집사들 사이에 인기 있는 국산 브랜드 토분을 사는 건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만큼이나 어렵다. 1~2개월에 한 번씩 업체 온라인 샵에 새 제품이 올라오면 1~2분 사이에 품절이 된다. 내수 침체라지만 몇몇 국산 브랜드 화분은 마케팅도, 영업전략도 필요 없을 정도로 고객 충성도가 높다.

한국산 수제 토분의 전성시대

식집사들 사이에 구매 전쟁이 벌어지는 토분. [사진 두갸르송 홈페이지]

식집사들 사이에 구매 전쟁이 벌어지는 토분. [사진 두갸르송 홈페이지]

간결한 형태의 화분 디자인과 깔끔한 마무리로 인기가 대표적 국산 수제토분 두갸르송. 지난 10월에 출시한 그린팟 시리즈는 판매 시작과 동시에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될 정도로 구매자가 몰려 거의 1분 이내에 전 제품이 품절됐다. 전국에 몇 안 되는 오프라인 판매장소는 문 열기 전부터 줄 서는 풍경이 벌어진다. 배송이 시작되면 중고거래사이트에 웃돈이 붙은 리셀(되팔기)도 등장한다.

중국에까지 소문나 중국 식집사가 찾는 국산 화분도 있다. 아뜨리움 토분은 장식적이고 섬세한 디자인과 색으로 마니아가 많다. 마니아 중에는 식물을 심는 용도보다 장식용으로 모으는 식집사도 있다. 이 토분은 커뮤니티 카페나 라이브방송 등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의 팟을 판매하는데 역시 순식간에 품절이 된다.

중국에서도 제작 주문을 받는 아뜨리움 화분. [사진 아뜨리움 토분]

중국에서도 제작 주문을 받는 아뜨리움 화분. [사진 아뜨리움 토분]

최근 혜성같이 나타난 수제토분 브랜드 포틱. 이 제품을 사용한 식집사의 입소문과 품질 대비 가격이 저렴해 인기가 치솟았다. 기존의 유명 수제 토분 중간 사이즈가 보통 2만~4만원인데, 이 제품은 절반 이하 가격이다. 이 토분도 온라인 샵에서 판매가 시작되면 1~2분 내에 품절되는 인기 토분 반열에 들어섰다.

포틱 토분. [사진 박신우도자기]

포틱 토분. [사진 박신우도자기]

도예작가 강정묵씨가 만드는 제네스포터리는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토분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카네즈센 토분은 간결한 디자인과 색감으로 식집사가 갖고 싶어 하는 토분 중 하나이며 디어마이팟, 스프라우트, 가드너스와이프 등의 국산 토분 역시 온라인에 제품이 올라오면 대개 당일로 품절된다.

 카네즈센의 경주 팟 시리즈. [사진 카네즈센]

카네즈센의 경주 팟 시리즈. [사진 카네즈센]

스프라우트 토분. [사진 스프라우트]

스프라우트 토분. [사진 스프라우트]

널리 쓰이는 화분은 재질에 따라 플라스틱 화분과 점토로 구운 토분, 도자기분, 부직포 화분 정도로 구분된다. 소재 자체로는 자토를 이용해 가장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는 도자기분이 표면의 미려함과 강도 면에서 가장 우월하다. 하지만 밀도가 높은 만큼 식물에 준 물이 늦게 마르고 통기성이 떨어져 식물을 많이 키우는 식집사들 사이에서는 선호도가 떨어진다.

식집사가 가장 선호하는 토분

플라스틱 화분은 통기성과 물마름이 토분보다 떨어진다. 심미성도 토분이나 자기분보다는 부족하지만 가볍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크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화분의 단점인 통기성을 보완하고 화분 옆면을 터서 뿌리가 화분 벽면을 돌며 자라는 뿌리서클링(circling)현상을 막고 화분 내 흙 이용도를 높여준다는 슬릿분이 널리 쓰인다. 이 슬릿분은 주로 일본 제품이라 국산품 개발을 기다리는 식집사도 있다.

블루베리 등 과실수나 채소 재배에 많이 쓰이는 부직포화분. [사진 화분월드]

블루베리 등 과실수나 채소 재배에 많이 쓰이는 부직포화분. [사진 화분월드]

부직포 화분도 최근 많이 쓴다. 얼마 전 박세리 골프감독이 집에서 파인애플을 키우는 모습이 TV에 나왔듯이 블루베리, 샤인머스캣, 파인애플 같은 열대성 과실수를 키워 보려는 사람도 많다. 블루베리 같은 과실수, 감자·고구마 같은 뿌리식물을 키울 때 많은 양의 흙을 담기 좋고, 배수가 잘되며 햇빛 차단에 유리한, 짙은 색상의 부직포 화분을 찾는다.

국내 토분 시장은 종전에는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산 및 베트남산 토분과 여기 못지않게 저렴한 이탈리아산, 독일산 토분이 대중적으로 팔려 왔다. 대량생산되는 국산 토분도 없지는 있었지만 대중적 인기는 높지 않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 도예작가가 수제 토분의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내놓은 토분은 뛰어난 디자인과 색감, 깔끔한 마무리 등 완성도가 높아 식집사들의 갈구 대상이 되었다. 몇 년 사이 하이엔드 토분 시장은 한국 도예가들의 브랜드 수제 토분이 장악하게 됐다. 대중적 선호도가 높았던 이탈리아산이나 독일산 토분은 지금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토분으로 전락했다.

제작연대 13세기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연꽃 구름 학무늬 화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작연대 13세기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연꽃 구름 학무늬 화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조상은 고려 시대인 12세기에 이미 고려청자로 동아시아를 사로잡았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중국과 함께 자토로 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던 고려가 만든 고려청자는 남송시기 중국인들이 ‘천하제일’로 꼽았다는 것이 남송의 기록물 ‘수중금(袖中錦)’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도토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토분은 자토로 만드는 자기 종류와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한국 브랜드 수제 토분의 융성을 보면서 어게인 고려청자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일일까?

전 금융투자협회 상무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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