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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앞 드럼통서 숨진 아기···다시 주목받는 '비밀출산제'

중앙일보

입력

서울 관악구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옆 드럼통 주변에서 지난 3일 수건에 싸인 남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뉴스1

서울 관악구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옆 드럼통 주변에서 지난 3일 수건에 싸인 남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뉴스1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 앞의 '베이비박스'에 적혀 있는 문구다. 이 교회는 2009년부터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들의 영아 유기를 막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왔다. 지난 10여년간 맡겨진 영아만 약 1600여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3일 오전 5시 40분쯤 베이비박스 바로 앞에서 영아 시신이 발견돼 교회 관게자들을 놀라게 했다. 관악경찰서는 4일 “영아를 유기한 20대 초반 여성을 거주지에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영아 유기 1272건  

미혼모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미혼모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유기되는 영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10년~2019년)간 발생한 영아유기 사건은 총 1272건이다. 2014년 41건에서 2018년 183건으로 약 4배 이상 늘었다. 같은 시기 영아 살해도 110건 발생했다. 지난달엔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영아를 판매하겠다는 글을 올린 A씨(26)가 경찰에 입건됐다.

백 의원은 영아 유기를 막기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의원은 “영아 유기를 방지하기 위한 영아 유기·살해죄의 형량을 높이는 개정안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현행 법상 영아 유기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미혼모 지원하고 인식도 개선해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청소년 미혼모 공동생활가정의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장진영 기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청소년 미혼모 공동생활가정의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장진영 기자

처벌이 근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경 한국 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이해하지만, 사후 처벌보다는 영아 유기를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을 때 상담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며 “임신단계부터 미혼모들을 정신적·물질적으로 지원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 선택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아이의 아빠에 대한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고 미혼모에 대한 비난만 이어진다”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영아를 유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미혼모 지원을 늘리면 미혼모가 증가한다는 잘못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지만 미혼모 지원이 활발한 선진국이라고 결코 미혼모가 증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미혼모 보호 위한 ‘비밀출산제’ 주장도 

‘비밀출산제’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비밀출산제는 산모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출산한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김지영 전국입양가족연대 국장은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할 수 있도록 한 ‘입양 특례법 개정안’이 2012년 통과된 후 영아 유기가 급증했다”며 “해당 제도는 미혼모와 영아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밀출산제를 도입해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기관과 연계해 입양 및 보호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 산모와 아이를 동시에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비밀출산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국민의 힘 김미애 의원실 관계자는 “비밀출산제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이번 달 안에 재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0대 국회 때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당시 오신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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