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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짜사나이' 이근 "열심히 살아도 적은 생겨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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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에겐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연예인 못잖은 인기와 인지도를 누렸으니 말이다. 그를 모시려는 광고주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가 나온 광고는 자취를 감췄다.

‘가짜사나이’ 이근 전 해군 대위 단독 인터뷰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근 몇달 사이 이근(36)씨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해군 특수전전단(네이비실) 훈련을 콘셉으로 만든 유튜브 ‘가짜사나이’가 처음 나온 게 올 7월 9일이다. 이후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그는 단숨에 유명인이 됐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그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씨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다 도중에 관뒀다”고 한다. “하나를 설명하면, 다른 것을 문제 삼는 행태에 질렸기 때문”이란다.

그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늘 자랑스러워하는 군 경력에 대해 딴지를 거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이씨는 다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싶어했다. 중앙일보가 그를 3일 만났다.

갑자기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나.
전에는 그랬다(웃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유명해지니 책임감이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나서다. 그런 면에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해군 특수전단에서 근무했을 때 아덴만 청해부대에서 해상 검문 중인 이근씨. [이근씨 제공]

해군 특수전단에서 근무했을 때 아덴만 청해부대에서 해상 검문 중인 이근씨. [이근씨 제공]

대중이 왜 ‘가짜사나이’와 당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하나.
한 번도 나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웃기고 진지한 모습도 있지만, ‘가짜사나이’에서 나를 통해 대중이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배웠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이슈가 불거지면서 인기가 꺼졌다. 당황스러웠나. 대중이 원망스럽진 않았나.
당황하진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열심히 살아도 적은 생겨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에서 인종 차별을 많이 당했다. 늘 당해봤으니 내가 유명해지면 나를 공격할 사람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을 넘을 정도로 지나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유명인? 유튜버? 예비역 해군 대위?
‘가짜사나이’ 전까지는 군사 컨설턴트였다. 지금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다. 연예인은 결코 아니다. 나는 대중을 웃기려고 ‘가짜사나이’에 나오진 않았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내 사명이다. 다른 사람이 발전하도록 영향을 주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씨는 부모를 따라 3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에 입대한 경우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사실을 커서 알게 됐다고 들었다.
영어를 한국어보다 먼저 배웠다.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 사람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지원서를 냈을 때 내가 한국 국적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미국 해군 네이비실 과정에서 고공낙하를 준비하고 있는 이근씨. [이근씨 제공]

미국 해군 네이비실 과정에서 고공낙하를 준비하고 있는 이근씨. [이근씨 제공]

왜 한국 국적을 유지했나.
처음엔 국적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부모님은 내가 미국에서 교육을 마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셨다. 그런 계획을 내게 말하지 않으셨다.
이제 당신에 대한 논란 얘기를 좀 하자. 현역 시절 부사관에게서 200만원을 빌렸다 안 갚았다는 폭로가 있었다.
다 끝난 문제다. 채권자와 합의했다.  
미 국무부에서 일했고, 유엔에서 근무한다는 경력에 대해서도 의심받고 있다.
유엔에서 일하면 보안상 세부적인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유엔 여권만큼 확실한 재직증명서가 있을까. 지난달 유엔에서 퇴사했다. 나중에 다시 유엔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

기자는 2017년 11월 7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이씨를 처음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처음 찾은 날이었다. 이씨는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소속 안보수사관으로 경호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해군 특수전단(네이비실) 출신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상암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성추행 범죄로 벌금 2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공격이 계속되면서 나도 입장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변호사와 함께 당시 클럽 CCTV 영상을 봤다. 피해자 주장과 다른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CCTV를 보면 나와 피해자 사이에 피해자 남자친구가 있었다. 성추행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모든 사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재심을 청구할 건가.
변호사와 계속 상의해보겠다. 솔직히 CCTV 영상을 다 공개하고 싶다.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을 국민에게 맡기고 싶다.
미국 해군 네이비실 과정을 이수한 뒤 기장을 받고 있는 이근씨. [이근씨 제공]

미국 해군 네이비실 과정을 이수한 뒤 기장을 받고 있는 이근씨. [이근씨 제공]

이씨는 현역 시절인 2011~2013년 미국 해군 특수전전단(네이비실)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고급반(SQT) 과정도 마쳤다. 그런데 해군은 그에게 미국 연수 비용을 내라고 소송을 걸었다.

연수비 환수 소송은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1000원 한장도 안 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나는 원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다. 연수비 원금은 8000만원이 넘는다. 2018년 9200만원 정도를 갚았다. 그런데 올해 8월 추가로 이자 8000만원 이상을 더 내라는 통보가 해군에서 왔다. 연간 이율이 20%라고 했다. 다만 추가 이자 비용에 대해선 현재 해군과 조율하고 있다. 2013년 전역을 신청했다. 처음엔 해군에서 별말 없이 승인했다. 그러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8000만원을 내야 한다고 알려줬다. 위탁 교육을 다녀오면 그 기간의 2배를 더 복무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8000만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그래서 전역을 포기하겠다고 했는데, 해군은 ‘한 번 내려진 인사명령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미국 연수를 신청했는데, ‘미국에서 온 사람이 다시 미국으로 가냐’는 핀잔만 들었다. 간신히 기회를 얻었다. 초급반(BUDS) 과정을 수료하자, 미 해군 네이비실이 내게 장교과정(JOTC)과 고급반 과정을 권유했다. 초급반 과정은 체력단련과 같다. 그러나 고급반 과정은 군사기밀이 많이 들어있다. 실제 미 해군 항공기와 잠수함을 탄다. 그래서 아무나 뽑진 않는다. 내가 동맹국 장교로선 처음이라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해군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미국에서 왔고, 해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미 해군 네이비실에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예산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 해군 네이비실이 해군을 설득해 겨우 갈 수 있었다.”

논란 속에서도 핼러윈 분장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등 태연한 모습을 보여줬다.
논란이 있다고 내가 하는 일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위기를 만나면 그걸 에너지로 만들려고 한다. 더 열심히 살려고 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할 것이다. 참고로 좀비로 꾸민 핼로윈 사진은 지난해 촬영한 것이다.
왜 네이비실이 되고 싶었나.
수영을 오랫동안 했다. 그래서 바다가 좋았다. 특수부대에 가려고 육ㆍ해ㆍ공군을 다 알아봤는데 네이비실이 최고였다. 바다뿐만 아니라 땅과 하늘에서도 작전하는 전천후 특수부대잖나. 미국에서 네이비실이 될 수 없으니, 한국에서 네이비실이 된 것이다.
2013년 미국 해군 네이비실 훈련 책임자가 해군 부대장에게 이근씨의 고급반(SQT) 과정 입교를 허락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보낸 편지. 임현동 기자

2013년 미국 해군 네이비실 훈련 책임자가 해군 부대장에게 이근씨의 고급반(SQT) 과정 입교를 허락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보낸 편지. 임현동 기자

2013년 미국 해군 네이비실 훈련 책임자가 해군 부대장에게 이근씨의 고급반(SQT) 과정 입교를 허락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보낸 편지. 임현동 기자

2013년 미국 해군 네이비실 훈련 책임자가 해군 부대장에게 이근씨의 고급반(SQT) 과정 입교를 허락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보낸 편지. 임현동 기자

네이비실에서 ‘실’은 바다(SEa), 하늘(Air), 땅(Land)의 영문 대문자를 모아서 만든 ‘SEAL’을 뜻한다.

귀국한 뒤 해군에 입대해 네이비실에 지원했는데, 함장이 말렸다고 들었다. 어떻게 설득했나.
모든 군인은 다 중요하다. 이발병, 운전병, 취사병도 다 중요한 전력이다. 그런데 나는 특수부대가 내 적성에 맞는다. 함장이 승조원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내가 압도적으로 1등을 했다. 그랬더니 함장이 사인을 해줬다.
아직도 한국어가 서투르다.
매우 어렵다. 그래서 주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요새는 공인이기 때문에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한국과 미국의 네이비실 가운데 누가 더 세나.
미국은 전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미국 네이비실은 노하우가 풍부하다. 하지만 한국 네이비실이 잘하는 게 있다. 한국 사람이 머리가 더 좋다. 또 체력이 더 좋다. 한국 네이비실이 경험만 갖추면 톱클래스라고 생각한다.
해군과 네이비실을 사랑한다면서 왜 전역했나.
평생 군인을 하려고 했다. 미국 연수를 갔다 온 뒤 네이비실의 전술체계와 장비를 개선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은 장비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당시 상부에선 ‘젓가락 들고 싸우라면 싸우는 게 군인’이라며 나를 찍어 눌렀다. 내가 자꾸 의견을 개진하자 행정 부서로 보내버렸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네이비실 중대장이냐’는 소리도 들었다. 군대에선 어려우니 군대를 나와 민간 컨설턴트로 군대를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버지니아 군사학교(VMI) 졸업반지를 보여주고 있다. 버지니아 군사학교는 사관학교처럼 군사교육을 하는데 졸업 후 장교 임관이 필수는 아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으로 꼽힌다. 임현동 기자

이근 예비역 해군 대위가 버지니아 군사학교(VMI) 졸업반지를 보여주고 있다. 버지니아 군사학교는 사관학교처럼 군사교육을 하는데 졸업 후 장교 임관이 필수는 아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으로 꼽힌다. 임현동 기자

군 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다. 후회는 안 한다. 지나간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 군과 경찰을 훈련하고, 교리를 다듬는 군사 컨설팅 일은 계속 하고 싶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 본 적 없다. 한국인으로 자랑스럽다. 군을 떠났지만 평생 해군을 사랑한다. 군과 해군을 위한 일을 하겠다.

이철재ㆍ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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