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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절반 '전화 공포증'…"옆에 있어도 메신저가 편해요"

중앙일보

입력

LG화학 직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 기반 협업 소프트웨어인 '팀즈(Teams)'로 업무를 하는 모습. LG화학은 지난 4월부터 전 세계 사무기술직 1만8500명이 팀즈 기반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LG화학 직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메신저 기반 협업 소프트웨어인 '팀즈(Teams)'로 업무를 하는 모습. LG화학은 지난 4월부터 전 세계 사무기술직 1만8500명이 팀즈 기반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LG화학

“전화가 울리면 긴장돼요. 갑자기 모드가 확 바뀐달까? 메신저로도 실시간 묻고 답하고 할 수 있잖아요. 일할 때도 메신저가 훨씬 편해요.” (대기업에 다니는 28세 임영선 대리)

[기업딥톡 41] 2030 맞춰 의사소통 방식 바꾸는 기업들

성인 절반 “통화가 무서워요” 

직장 내 의사소통의 방식이 ‘전화와 대면’에서 ‘문자와 비대면’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익숙해 ‘모바일 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 Z세대(1990년대~2000년대 출생)가 기업의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음성과 문자는 공존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전화와 대면을 기본이라 생각하고, MZ 세대의 생활은 문자와 비대면이 중심이라는 데에 간극이 있다. 1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3.1%가 ‘전화 공포증(콜 포비아)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은 취업 준비생의 콜 포비아 응답률이 57.7%로 높았다. 콜 포비아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전화보다 메신저앱·문자 등 비대면 의사소통에 익숙해져서(58.2%)’였는데, 가장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식도 ‘문자·메신저(58.9%)’였다.

말실수, 태도 평가도 부담 

이들은 왜 메신저 소통을 선호할까. 직장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여러 명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말실수를 줄일 수 있고 ▶높은 상사와 대화할 때 부담이 덜하고 ▶지시사항 등 대화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원하지 않는 대답이나 대화 주제는 거르거나 유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가 공통적이다. 흥미로운 건 20·30세대가 직접 만났을 때 이뤄지는 ‘태도나 분위기’에 대한 평가에도 부담을 느낀다는 점이다.

김보라(가명·25) 사원은 “상무님이나 부장님을 만나 얘기하면 업무 외에도 표정이나 말투, 몸짓에서 예의 바르고 의전을 잘하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런 데에 익숙지 않은데 괜히 안 좋은 인상을 드릴까 봐 전화나 대면을 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메신저 '팀즈'로 업무하는 화면(왼쪽)과 스마트폰의 메신저와 연동해서 타자를 칠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 사진 독자제공

메신저 '팀즈'로 업무하는 화면(왼쪽)과 스마트폰의 메신저와 연동해서 타자를 칠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 사진 독자제공

인식의 차이가 크다 보니 그동안 메신저는 부수적인 소통·업무 수단이라 여겨온 기성세대와의 마찰도 일어난다. 국내 식품 업체에 다니는 이 모 부장은 “직원들이 바로 앞에 앉아 있으면서 메신저로 뭘 물어보길래 ‘너희들 나 싫어하냐?’고 했다”며 “특히 본 적도 없는 다른 부서 직원이 메신저로 인사를 해오면 예의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부서장인 이 모(51) 상무는 “앞뒤 설명을 하고 주의 사항을 강조할 일도 있는데 어떻게 문자로 정확히 전달하나”며 “타자 치고 있는 게 답답해서라도 전화를 걸거나 직접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메신저 활성화 정도는 기업문화나 리더의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제조업체 박 모 과장은 “옆 부서에선 웬만한 문서는 다 메신저로 오가는데, 우리는 부서장이 편한 대로 아직도 보고할 때 서류철이 들어가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있다”고 했다.

‘카카오워크’ 한 달 만에 5만곳 도입 

그런데도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비대면 메신저 업무는 곳곳에서 확산하는 추세다. 유통 대기업의 최 모 부장은 “사내도 사내지만 외부 협력사와의 업무가 대부분 메신저로 이뤄지기 때문에 빠른 메시지 전달을 위해 항상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상담 챗봇(채팅로봇) 시작화면 캡처.

카카오뱅크 상담 챗봇(채팅로봇) 시작화면 캡처.

한화솔루션의 경우 최근 사내 메신저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업그레이드했다. 현대차와 LG화학 등 마이크로소프트(MS)의 메신저 기반 협업 소프트웨어인 ‘팀즈’를 전사적으로 도입한 회사도 늘고 있다. 지난 9월 출시된 업무용 메신저 ‘카카오워크’는 출시 한 달 만에 사용 기업과 단체가 5만 곳을 넘었다.

상담 내용의 특성상 사람 간 대화가 필수였던 은행에서조차 메신저 상담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 8월 챗봇(채팅로봇)을 통한 상담비중이 51.8%를 기록해 전체 상담의 절반을 넘겼다. 챗봇 상담은 20대 약 21%, 30대 약 20% 등 MZ세대가 주로 이용한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사람이 응대하는 경우에도 콜 상담 외에 카카오톡으로 채팅하듯 하는 비대면 상담 고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했다.

‘주관적’ 대면 평가 객관화 필요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의 저자인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MZ세대는 언어적 소통은 메신저나 SNS(소셜미디어) 앱으로 하고 비언어적 컨텍스트(문맥)는 이모티콘 등으로 보완하며 살아온 세대”라며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일하려는 직원들에게 무작정 기존 세대의 방식을 강요해봤자 업무 효율만 떨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기업 등 조직에서도 비대면 업무라는 큰 흐름에 맞춰 메신저 등 업무 소프트웨어로 정확하게 업무를 부과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건 비대면으로도 ‘빡세게’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 동시에 어떻게 대면이 갖는 장점과 미덕을 살리느냐”라며 “그동안 조직생활에서 과도한 비중을 차지했던 태도·예의·의전·센스 등 주관적인 ‘맥락요소’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립하는 게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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