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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보다 나은데요?"…80년대생 금수저들의 초고속 승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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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중심가에 기업 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중심가에 기업 빌딩들이 밀집해 있다. 연합뉴스

“요즘 모이면 부쩍 인사 얘기를 많이해요. 누가 임원 될 거 같다, 누구는 집에 갈 거 같다….올해는 좀 빨라진다는 소리가 돌아서 벌써 뒤숭숭해요.” (A기업 이 모 부장)

[기업딥톡 38]'젊은 오너'가 촉발한 '젊은 임원'

직장가에 때이른 ‘하마평 시즌’이 시작됐다. 통상 기업들은 12월 전후로 임원인사를 발표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영환경 급변으로 시기가 앞당겨지고 변화 폭도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인사의 키워드 중 하나는 ‘젊은 임원’이다. 세대교체야 늘 있어왔지만 올해는 30대~40대 초반의 오너 3·4세의 경영 참여가 본격화하고, 코로나19로 조직·사업 조정 요구까지 커지면서 젊은 리더 기용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이력면에서도 오너 3·4세와 공감대가 있는 유학파, 컨설팅사 출신의 외부 인력 발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기업 ‘늦가을 파격인사’ 준비중

방아쇠를 당긴 건 한화그룹이다. 한화는 지난달 28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7)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와 함께 10개 계열사 대표들을 교체했는데 평균 연령이 58.1세에서 55.7세로 낮아졌다. 한화그룹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김은희(42) 한화역사 대표, 컨설팅사 맥킨지 출신인 박흥권(49) 한화종합화학 사업부문 대표 내정자가 대표적이다. 한화는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나이, 연차와 상관없이 전문성과 역량을 보유한 인재를 과감히 발탁했다”고 밝혀 후속 임원 인사에서도 차세대 인력의 대거 발탁을 암시했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8월 이뤄진 롯데그룹 인사의 키워드도 ‘인적쇄신’이었다. 롯데 2인자로 불렸던 황각규 부회장의 퇴진이 대표적이다. 롯데는 지난달 말로 계열사 600여명 임원들의 인사평가를 마치고, 예년보다 한 달 정도 앞선 11월 중하순께 임원 인사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일선에 나선 오너 3·4.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경영일선에 나선 오너 3·4.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말 인사를 당기는 일부 기업 외에도 젊은 임원이나 리더들이 부상하며 세대 교체 분위기가 완연한 기업은 여럿이다. 지난 2018년 취임한 구광모(42) ㈜대표는 지난해부터 각 계열사에서 선발한 30대~40대 초반 100여 명으로 구성된 ‘LG 미래사업가’를 운영중이다. LG 관계자는 “사실상 이들이 구 대표와 함께 할 미래 리더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구동휘 LS전무,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상무, 이경후 CJ E&M 상무, 이규호 코오롱인터스트리 전무,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등 업계 곳곳서 3·4세들이 보폭을 넓히며 세대교체 분위기가 감지된다. 오너가가 아니더라도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인 구창근(47) 올리브영 대표, ‘스타 개발자’로 이름을 알렸던 류긍선(43)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등 고성장 분야를 중심으로 젊은 경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인력을 믿고 기다리기엔 변화가 너무 급박하다”며 “올해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주로 신사업을 맡고 있는 오너 3·4세대와 눈높이가 맞는 인력으로의 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용주의 2030 “실무형 리더 좋아”

젊은 임원의 증가를 바라보는 직장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의 A 과장(37)은 “정기선 부사장이 팩트와 논리 중심이다보니 50대 이상 임원들 사이에서 ‘너무 직설적’이란 말도 나오지만, 우리(젊은 직원)끼리는 나이나 연차보다 성과와 결과를 우선시하는 게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내정자와 일했던 30대 후반 B차장도 “격식과 의전을 중시하는 기존 임원들보다 확실히 실무 중심이고 빠르다”며 “한화그룹의 보수적인 문화를 해소하는 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외부 영입 임원에 대해서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의견이 많다.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5)씨는 “회사를 오래 다녔다고 업무를 더 잘하는건 아닌 것 같다”며 “능력만 있다면 젊은 리더들이 지금의 ‘꼰대’보다 말도 잘 통하고 합리적이라 조직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2030 밀레니얼 세대는 실용주의·개인주의가 강하다. 행동이나 가치관, 노력하는 방법과 성공 방정식까지 산업화 시대의 2차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신인류”라며 “기업의 리더십도 2030세대와 교감이 가능한 70년대생, X세대로 빠르게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의 자격 ‘일·사람과 융합 가능한가’

하지만 젊은 리더나 외부 영입 등 파격 인사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SK 계열사에 다니는 한 부장은 “외부에서 오는 임원은 주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가 많은데 특정 ‘기능’에만 집중하다보니 조직에 적응을 못하고 일찍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조직이 커 갈수록 젊은 사람, 스페셜리스트만 많다고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업무 평가가 더 좋은 남성이 있는데 여성이라고 임원을 시키거나, 검증도 안된 사람을 리더로 스카웃해 구성원들의 의욕을 꺾고 조직 분위기마저 해치는 걸 경험했다”며 “적재적소에 맞는 인사가 우선”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조직과 인력변화의 핵심으로 ‘융합’을 꼽는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싫든 좋든 시장은 IT와 디지털로 빠르게 내달릴 것이고 기업도 언제든 빠르게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직급이나 직위보다 ‘맡은 일’을 중심으로 이질적인 일, 다른 사람들과 융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앞으로 기업 안팎으로 사업과 사업, 부서와 부서가 레고블록처럼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일이 빈번할 텐데, 조직 내 인력 간에 지식·기술·경험을 언제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냉소적으로 내 일만 하거나 겉도는 인원이 많아지면 그 기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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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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