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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그건 착한 사람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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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

나는 착하지 않다. 양쪽에 ‘무난’과 ‘괴팍’이라는 단어를 놓고 내 자리를 찾자면 괴팍 쪽에 조금 더 가깝다. 오죽하면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부모님에게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아버지는 당시 여자친구에게 “내가 얘 아빠라서 잘 아는 데 얘는 성격이 정말 이상해. 그걸 잘 알아야 해”라고 말했다. 다행히 파혼은 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부쩍 ‘착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청소 앱으로 부른 도우미 분에게다. 앞서 말했듯 내 성격은 좀 피곤하다. 설거지가 밀려 있으면 불안하고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야 쉴 수 있다. 피로가 쌓여 맥을 못 추던 나를 위해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간 날 나는 소파와 침대까지 들어내고 5시간에 걸쳐 대청소한 뒤 몸살이 났다. 기가 찬 아내는 쉬는 날 앞으로 청소 앱으로 도우미를 부를 테니 잠자코 있으라 명하셨다. 그렇게 부른 도우미는 과연 프로페셔널한 분들이라 집에서는 윤이 났다. 대부분 예약한 4시간 동안 전혀 쉬지 않고 청소를 하셨다. “쉬는 시간 가지고 하세요”라고 하면 “집 주인이 참 착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택배연대노조가 계약물량 준수, 노동환경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연대노조가 계약물량 준수, 노동환경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로기준법 제5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줘야 한다. 이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청소 업체 매니저가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법은 그렇기에 늘 30분 이상은 쉬는 시간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꼭 법이 아니어도 나는 직장에서 적당히 일한 듯하면 적당히 쉰다. 근무하는 동안 감시당하지도 않는다. 4시간 동안 기사만 쓰고 취재만 하라고 하면 이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중간에 쉬는 법이 없었다. 결국 “4시간 채우지 마시고 3시간 30분 되면 가주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다시 “참 착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드라마 ‘도깨비’에 이런 장면이 있다. 치킨집 사장 써니(유인나)는 “앞으로 주급으로 줄 거야. 찜질방 가서 씻고 식혜 사 먹어”라며 집을 나온 은탁(김고은)에게 임금을 준다. 은탁이 “감사합니다”며 고개를 숙이자 써니는 “알바생, 받을 거 받는데 그렇게까지 감사해 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고 답한다.

최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올해 14명의 택배 노동자가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해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 후 집 앞에 택배기사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와 간식을 준비하거나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요구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노동법 지키는 것만으로 착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나 일하다 죽는 세상 말고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태윤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