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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AI 아바타 친구’ 언제든 관계 끊고 배신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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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호 26면

[미래 Big Questions] 친구의 미래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 속의 성 제롬’(1480). [바티칸 박물관]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 속의 성 제롬’(1480). [바티칸 박물관]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젊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로마 원로원이셨고, 명문 푸리가문 출신인 어머니는 평생 비단옷만 입었다. 고대 로마 최고 가문 여성이었던 에우스토키움 율리아(Eustochium Julia, 368~420). 로마의 모든 문은 그녀를 위해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부와 도시가 아닌 가난과 사막을 그녀는 선택한다. 마치 거지 같은 모습으로 로마에 나타난 성 제롬(347~420).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은자 생활을 하던 제롬은 설득한다. 친구도, 도시도 아닌 사막과 외로움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구 정복한 인류 ‘킬러 앱’은 친구 #많으면 많을수록 생존율 높여줘 #5000년 전 냉동인간 ‘외치’도 비슷 #‘확장된 친구’ 통해 외로움 극복 #‘외로운 사막’서 참된 친구 알아봐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이 세상 친구가 아닌 영원한 구원과 친구를 찾았던 에우스토키움. 그리스어를 잘 몰랐던 제롬이 라틴어 첫 성경 번역판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그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제 궁금해진다. 왜 그녀는 이 세상의 편안함과 친구를 포기한 걸까? 인간은 왜 친구가 필요한 걸까?

인류 커진 뇌 덕에 친구를 무기화

수 백만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탄생한 ‘호모’ 종의 삶은 두려움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맹수들에겐 언제든지 잡아먹기 쉬운 ‘야식’에 불가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맹수들은 이제 아이들의 셀카 모델이 됐다. 왜 가장 나약한 동물 중 하나인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걸까? 누구보다 큰 뇌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뇌가 크다는 사실 그 자체는 아무 의미 없다. 두개골 안에 있는 뇌를 꺼내 무기로 삼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뇌의 가치는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있다. 문명, 도시, 핵무기, 인터넷. 분명히 지구를 정복하는 데 공헌했을 것이다. 여기엔 논리적 문제가 하나 있다. 호모 종의 뇌는 이미 수백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와 하빌리스 시절부터 커지기 시작해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현대인 크기의 뇌를 가졌다. 커진 뇌의 가장 직접적인 결과물이 어쩌면 문명과 기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원초적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친구들”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나약하지만 10명이 모이면 맹수가 두렵지 않고, 100명이 힘을 합치면 매머드 사냥도 가능해진다. 많으면 많을수록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친구들.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적어도 신뢰할 수 있고, 서로 동등한 거래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변치 않는 유전적 가치를 가진 식구들과는 달리 기능적 가치가 핵심인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과거 거래관계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주는 바나나는 언제나 받아먹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은 친구와의 관계는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냉동인간 ‘외치’의 모습(기원전 3400~3100). [사진 남 티롤 박물관, 위키피디아]

냉동인간 ‘외치’의 모습(기원전 3400~3100). [사진 남 티롤 박물관, 위키피디아]

뇌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사람과의 거래관계를 기억하고 그들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커진 뇌 덕분에 생존에 필요한 친구를 인류는 ‘무기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커질 수는 없다. 이미 인간의 뇌는 산모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뇌가 더는 커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새로운 친구들을 확보할 수 있을까? 답은 “상상의 친구들”이었다.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 주던 부모님. 더는 살아 계시지 않지만,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기억한다면, 그들의 영혼만이라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아니, 부모님의 영혼만이 아니다. 해와 달, 하늘과 바다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에게 기도하고 부탁하면 인간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그들은 나의 ‘슈퍼-친구들’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위험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상상의 슈퍼-친구들보다 더 실체가 있는 친구들 역시 필요했다. 우리는 더는 100명의 친구가 아닌, 백만 명, 천만 명의 ‘내 편’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알아보고, 기억하고, 직접 대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몇백명에 불가하다. 우리는 어떻게 수천만 명의 새로운 친구를 갖게 된 걸까? 바로 ‘신뢰’를 아웃소싱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신뢰하는 제3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통해 간접적 신뢰 관계와 간접적 친구 관계를 구성할 수 있다. 같은 언어, 같은 민족, 같은 역사라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는 내 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정부와 국가를 위해 전쟁터로 향하고, 지지하는 축구팀을 위해 목이 쉬도록 수천 명의 다른 팬들과 함께 응원하는 이유다.

진화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다. 특정 상황에 도움이 되었던 기능이나 구조가 필요 이상으로 증폭하고 부풀려지는 현상이다. 공작의 꼬리는 너무 커져 나는 기능을 방해하고, 등껍질이 너무 무거워진 거북이는 스스로 드러눕지 못한다. 인간도 비슷하다. 내 편이 될 수 있는 친구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진화적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슈퍼-친구, 그리고 부족과 민족을 넘어 인류는 물건과 장소 역시 친구로 삼으려 한다.

1991년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냉동인간 외치(Ötzi). 냉동 상태로 잘 보존된 그의 시체는 5000년 전 고대 인류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그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 칼과 화살과 돌과 가방.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수많은 물건을 가지고 나서듯, 외치 역시 장비를 수집하고 가지고 다녔다. 장소 역시 비슷하다. 농사가 잘되고 살찐 동물들로 가득한 초원, 천둥·번개가 치면 숨을 수 있는 거대한 바위, 미래 사냥의 성공을 빌기 위해 그려 놓은 벽화로 가득한 깊은 동굴… 모두 생존에 도움되는 새로운 친구들이었다.

외로움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

고어 비달(1925~2012)

고어 비달(1925~2012)

친구는 중요하다. 동시에 문제도 있다. 작가 고어 비달이 말했듯 “친구가 성공하면 언제나 내면에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점점 더 확장된 개념의 친구를 확보한 우리. 하지만 너무나도 확장되었기에, 이제 친구의 성공이 나의 생존과 행복이 아닌, 불행과 부러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친구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확장된 친구의 개념을 통해 지구를 정복한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친구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만 연결된 “랜선” 친구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가상 세상에서의 아바타 친구들. 더구나 그들은 실물의 친구들이 가지지 않은 큰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탈퇴하고, 배신하고, 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위험한 세상에서 인류는 언제나 외로웠다. 외로움은 홀로 남은 이 세상에서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기 때문이다. 확장된 친구 개념을 통해 존재적 외로움을 극복하려던 인간. 세상을 정복하고 이제 지구의 주인이 됐지만 우리는 아직도 외롭다. 존재적 외로움을 여전히 느끼기에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며 새로운 친구를 찾고, 미래 로봇과 인공지능이 또 다른 새로운 친구가 돼 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친구 역시 인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600년 전 고대 로마 여인 에우스토키움은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인간은 친구를 찾지만, 마치 그림자같이 외로움은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시끄럽고 번화한 대도시 로마에서의 외로움은 가짜 친구를 찾게 하지만, 사막에서 느끼는 진정한 외로움은 드디어 참된 친구를 알아보게 한다고.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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