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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길은 사람이었다…산티아고 순례 마치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54)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항공권을 사고야 말았던 것도, 세상에 막 나왔던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책을 안고 걸었던 것도 다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사진 박재희]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항공권을 사고야 말았던 것도, 세상에 막 나왔던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책을 안고 걸었던 것도 다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사진 박재희]

“꿈이라고 말해. 이게 현실일 수는 없잖아!”
“오 마이 갓, 이건 꿈이야!”

차갑게 언 볼을 버프로 감싼 프란신과 부리부리 박사 안경을 쓴 톰, 유쾌한 순례자 부부가 내 앞에 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만났던 친구를 30개월 후에 우연히, 산티아고 광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프란신은 연신 자기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가 다시 내 얼굴을 감싸며 눈을 맞췄다. 우리는 꿈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포르투갈 루트로 700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이었다. 2년 전 산티아고를 걸으며 만났던 프란신과 톰 부부와는 후반에 엇갈려 연락처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다른 친구들과 메일이나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면서 두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다. 두번째 까미노를 완주한 날 거짓말처럼 둘이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의 재회는 설명하기 힘든 방식으로 이루어지곤 하는 까미노의 신비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만났던 친구를 30개월 후에 우연히, 산티아고 광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산티아고를 걸으며 만났던 친구를 30개월 후에 우연히, 산티아고 광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산티아고 순례로 삶이 바뀐다는 말은 거짓말처럼 들린다. 수 십년 쌓아온 습관과 가치관이 까미노를 걷는다고 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른 경험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얻고 난 후 순례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까미노는 가끔씩 삶에 지칠 때, 힘들 때마다 들춰 보며 추억하는 정도로 남는다. 그런데 순례의 시간으로 삶을 통째로 흔드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프란신과 톰이 그 경우에 속한다. 로맨스 소설을 습작하던 프란신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타임랩스 판타지 소설을 완성했고, 신학교수였던 톰은 명예퇴직 후 순례자를 위해 봉사하는 호스피탈레로가 되려고 준비중이다. 순례를 삶의 중심에 들여놓은 것이다.

끝에서 끝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마을 카보다호카(Cabo Da Roca)에서 세상의 끝 피스테라까지. 평생 단 한 번이라고 되뇌었던 순례를 마치고 이 언덕에 섰다. 내게 딱 한 곳을 꼽으라면 여기다. 생장에서 시작한 프랑스 루트, 리스본에서 출발한 포르투갈 루트 모든 구간이 모두 다른 의미를 주었지만 내 순례의 완성, 마무리는 여기라야 맞다.

피스테라 항구 마을에서 등대까지 가는 3km의 도보 언덕길을 걸으며 고요하고 아득한 바위에 앉아 여정을 마무리했던 그 날이 날 부른 것이다. 어쩌면 이 바위에 다시 오려고 미련하게 아픔을 참으며 걷고, 울고 그러기를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항공권을 사고야 말았던 것도, 세상에 막 나왔던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책을 안고 걸었던 것도 다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세상이 끝나는 곳에서 하늘은 바다로 쏟아져 내린다. 쏟아진 하늘이 침몰하는 바다를 마주하는 피스테라 파로에 왔다.

이제 어디를 걷더라도, 걷지 않더라도 순례란 그냥 사는 것임을 안다. 하루 하루 자신의 몫을 살아내는 것, 순간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몫을 누리는 것. 그런 일상이 순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제 어디를 걷더라도, 걷지 않더라도 순례란 그냥 사는 것임을 안다. 하루 하루 자신의 몫을 살아내는 것, 순간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몫을 누리는 것. 그런 일상이 순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순례는 마무리되고 또 이어진다. 따로 또 같이 기쁨과 추억을 나눈 후 다시 혼자가 되었다. 누구는 코루나(A Coruna)를 향해 떠나고 다른 사람은 마드리드까지 걷기로 했고 나는 무시아를 거쳐 피스테라를 향했다. 이제 어디를 걷더라도, 걷지 않더라도 순례란 그냥 사는 것임을 안다. 하루 하루 자신의 몫을 살아내는 것, 순간 순간 나에게 주어진 몫을 누리는 것. 그런 일상이 순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집으로 돌아간 후 내 일상은 많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1500km를 넘게 걸었지만 그것으로 도를 깨우친 것도 아니며 게으르고 성마른 나를 벗어나는 마법을 얻은 것도 아니다.

새로 알게 된 것도 있다. 다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 것은 아니라 해도 내가 까미노 이전의 나와 똑같은 내가 아니란 것. 세상에는 눈으로는 볼 수 없은 수 많은 단서가 숨어 있다는 것. 아름다운 것은 모두 오래 걸리며 느리게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것은 결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목록에 적혀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뭉뚝한 일상이 나를 누르는 날이면 빗속에서 깔깔 웃던 환희를 꺼내어 볼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연대의 방식을 떠올리며 때로는 기꺼이 노란 화살표가 되는 법을 찾을 것이다.

뭉뚝한 일상이 나를 누르는 날이면 빗속에서 깔깔 웃던 환희를 꺼내어 볼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연대의 방식을 떠올리며 때로는 기꺼이 노란 화살표가 되는 법을 찾을 것이다.

까미노는 내게 지나간 사건, 과거가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것이 아니라 귀한 서랍 속, 상자 속 보물처럼 내게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지하철을 환승하는 생활 속에서도 나는 가끔 메세타의 바람을 느낄 것이다. 뭉뚝한 일상이 나를 누르는 날이면 빗속에서 깔깔 웃던 환희를 꺼내어 볼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연대의 방식을 떠올리며 때로는 기꺼이 노란 화살표가 되는 법을 찾을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 사소한 순간을 기뻐하고 더 많이 웃으며 매일의 까미노를 걸어볼 생각이다. 그렇게 해 볼 자신이 생겼다.

900km, 다시 800km가 넘는 길을 걸어왔지만 지난 길은 거리로 표현 할 수 없다. 길은 사람이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었고 사람들의 염원과 기도, 눈물이 만든 이야기다. 길을 함께 걸었던, 언젠가 걸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부엔 까미노! 봉 까미뉴! 우리 모두 길에서 안녕하길.(끝)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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