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죽은 동생 바이올린 메고 산티아고 순례한 소녀

중앙일보

입력 2020.10.02 12: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52)

마지막을 맞는 아침인데 설렘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모두 출발하고 알베르게가 텅 빌 때까지 출발하지 못하고 공연히 늦장을 피웠다. 테오에서 산티아고까지는 14km다. 빨리 걸으면 점심시간에 도착하겠지만 난 오늘 최대한 천천히 아껴 걸을 생각이다.

“순례길에서 어떤 메시지를 받았어요? 깨달은 게 있나요?” 햄 샐러드를 먹으며 얘기할 주제로는 너무 철학적이지 않나? 아마도 아이린은 말하고 싶은게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타인에게 묻는다. 느낀 게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린의 자기 고백이 봇물 터졌다.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하루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 이민도 보류할 거예요. 오빠는 마드리드에 집도 여러 채 가지고 있고 사업을 하거든요. 수입은 안정되었는데 왠지 이민자의 삶은 뿌리가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산티아고 광장. [사진 박재희]

산티아고 광장. [사진 박재희]

자신은 켤 줄도 모르는, 세상을 떠난 동생의 바이올린을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온 아르헨티나 소녀 아이린. 만날 적마다 순수하지만 엉뚱하고 철없다고 느꼈는데 의외로 똘똘하고 꽉 찬 소녀다. 그렇다 해도 한 번의 어떤 사건을 통해 깊은 통찰을 얻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깨달음이란 무수한 실수와 사소함의 반복에서 생기는 굳은살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한 달여의 시간을 통해 얻은 해답이라지만 쉽사리 잊힐 것이고, 위반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아이린이 단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선에 서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했다.

“나보다 어른인 건 알지만 오늘은 내 친구 재희가 정말 어른으로 느껴져요. 나이 물어봐도 돼요? 난 19살이고 엄마가 41살인데 우리 엄마보다는 나이가 적은 거 맞죠?”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아는 똘똘한 친구가 아닌가. 나이는 비밀로 하고 샐러드값을 내가 계산했다. 아이린의 ‘마이 프랜드 재희’가 자기 엄마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다는 것을 알면 충격을 받을까 봐 취한 조치였다.

“아이린, 삶은 그리 길지 않은 거 같아. 10년, 30년이 어마어마한 것 같겠지만 그렇지도 않더라고.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겨우 얼마 전 같이 느껴지거든.”

오늘, 벌써 몇 번째인지 급작스럽게 눈물이 솟는다. 걷는 동안 수없이 지나온 그만그만한 숲길인데 자꾸만 뭉클해졌다. 몇 년 전 첫 번째 순례에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날이 떠오른다. 40일을 걸어 산티아고에 입성하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지나친 무감함에 오히려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은 그와 반대로 너무하다 싶게 감상적이다.

산티아고 마지막 날.

산티아고 마지막 날.

이번 순례는 갑절로 힘들었다. 포르투갈 루트로 걷는 것이 프랑스 길보다 100km가량 짧은 데다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으니 훨씬 부담이 덜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 반대였다. 2018년 9월 포르투갈은 이상기온으로 한낮 38도가 넘는 폭염을 기록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는 카페나 바가 거의 없어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린 날도 많았다. 절대적으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까미노였던 것이 좋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힘들기도 했다. 첫 번째 프랑스 루트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던 노력은 돌이켜보면 유치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 없었다. 아예 사람을 마주치는 경우가 드물어 누구라도 멀리서 보이면 적잖이 안심될 정도였다.

힘에 부치면 숫자를 세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까미노를 걸으며 알았다. 머리는 텅 비고 귓속에 리드미컬한 이명이 울릴 만큼 힘이 들면 나도 몰래 숫자를 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면서도 어떤 존재가 나를 지켜보며 함께 걷는다는 확신이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계에 닿았을 때,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생각으로 한 발 짝도 꼼짝할 수 없었을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성당의 종이 울리곤 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신기할 정도로 딱 맞추어 벌어져서 급기야 까미노 후반에 이르렀을 때는 ‘곧 어디서 종소리가 들리겠군’ 하고 먼저 알아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산티아고 성당 앞에서.

오늘 눈물을 찔끔거리며 마지막 14km를 걸어 산티아고에 입성했다. 순례자의 광장으로 들어서는데 역시나 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저절로 무릎을 꿇었고 나는 가을 햇볕으로 따스하게 데워진 광장의 돌바닥에 엎드려 종소리를 들었다. 파란 잉크를 넣어 둔 수정 구슬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성당, 그 위로 구름이 빠르게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짜잔~ 축하드려요!”
“산티아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올려다보니 상희쌤과 윤서씨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같은 비행기로 왔는데, 까미노를 걸으면서는 단 한구간에서도 마주치지 못했다. 윤서씨는 일주일 이상 앞서 걸었고 상희 선생님도 느림보인 나보다는 늘 하루 이틀 빨랐다.

“혼자 산티아고 들어와서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좀 섭섭하더라고요.”

순례완주증.

순례완주증.

홀로 도착해 쓸쓸했다고 한다. 오늘 내가 테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은 나에게 깜짝 축하를 안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기다리고 있는 걸 알 턱이 없던 나는 마지막 길이 아쉬워 최대한 아껴가며 천천히 걸었는데 완주의 순간을 기념해주려고 광장에 앉아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나! 고맙고 미안해서 그리고 가을 하늘에 눈이 시려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두 번째 순례를 무사히 마쳤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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