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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코로나 해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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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불안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코로나 레드(분노)’ ‘코로나 블랙(절망)’도 있다. 다른 한편 코로나19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신조어도 등장했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건 ‘확찐자’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집콕’, 즉 ‘집’에만 ‘콕’ 박혀 지내다 보니 살이 확 쪘다는 의미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의 장난스러운 말 표현(pun)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잠시 들어온 딸이 ‘격리호텔’에서 매일 ‘배달 앱’으로 갖가지 음식을 시켜 먹더니 2주 후 ‘확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화들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 재택근무와 원격 교육으로 남편과 자녀들이 계속 집에 있는 바람에 하루 세끼를 모두 차려야 하는 엄마들의 힘든 상황을 뜻하는 ‘돌밥돌밥’이란 말도 있다.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또 밥 차린다!’의 줄임말이다.

‘코로나 블루’ 시대의 해학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승화하고 #위기감을 공감으로 대처해야 #정부 정책도 유머 활용 고려해보길

‘줌비’(zoombie)라는 영어 신조어도 있다. 요새 비교적 자주 국제 화상 회의를 하게 되는데, 이때 종종 ‘줌비’(zoombie)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줌(zoom)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로, ‘줌비’ 현상이란 연일 이어지는 ‘줌’ 회의에 지쳐 마치 ‘좀비’(zombie)처럼 되어버리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가령 화상 국제회의는 원활한 인터넷 접속을 위해 본인이 발언하는 때 외에는 대부분 마이크와 비디오를 끄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로 말하기도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꼭 필요한 발언만 짧게 마치고 마이크와 비디오를 끈 후 나머지는 듣는 둥, 마는 둥 넋 놓고 늘어져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좀비 같다는 얘기다. 이때 옷차림도, 모니터로 보이는 상의는 비교적 반듯이 차려입었지만, 하의는 반바지에 맨발로 의자에 기대어 넋 놓고 앉아있는 게 영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줌비’ 현상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닌 게, 인터넷을 찾아보면 각종 외국 ‘줌비’ 관련 기사들이 나온다.

필자의 비대면 ‘줌’ 수업에도 ‘줌비’ 수강생들이 등장한다. 지난 학기 대형 강의 때 일이다. 필자는 강의 영상과 소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마이크와 비디오를 끄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수업 마지막엔 모두 켜서 얼굴을 보며 끝내고자 했다. 이때 꼭 마이크와 비디오를 켜지 않는 수강생들이 소수 있다. 심지어 수업이 완전히 끝나고 학생들 대부분이 ‘줌’ 화면에서 사라진 후 나가라고, 나가라고 화면에 외쳐대는 데도 버틴다. 짐작건대 심하게 졸고 있거나 딴 데서 다른 일로 바빴을(?) 것이다. 하긴 필자도 종종 화상 회의에서 ‘줌비’ 짓을 했으니, 그저 웃어넘기곤 했다.

‘코로나 해학’, 어쩌면 ‘웃픈’, 웃기면서 슬픈 얘기일 수 있다. 웃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받는 자의 처지에선 웃을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공유하는 힘든 경험과 우울한 감정을 해학으로 웃어넘김으로써 조금이나마 긴장을 해소하고 집단적 공감을 형성해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갈 힘을 찾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진 않을까.

코로나해학

코로나해학

실제 유머가 코로나19 문제 해결과 위기 극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사례도 있다. 대만의 트렌스젠더 해커 출신 오드리 탕(Audrey Tang) 디지털 장관이 주도한 ‘풍문을 이기는 유머(humor over rumor)’ 캠페인이다. 몇 가지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져 있다. 첫째, 대만의 중앙감염병통제센터(CECC)엔 시민 누구건 무료 전화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데, 한번은 한 어린 소년이 분홍색 마스크를 쓴다고 놀림을 받아 학교에 가기 싫다는 전화를 해왔고, 다음 날 실시간 방영된 기자회견에 나온 모든 CECC 인사들이 분홍색 마스크를 쓴 모습을 연출했다는 에피소드다. 방역뿐 아니라 성 평등 교육 효과도 노렸다고 한다.

둘째, 화장실 휴지가 마스크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풍문이 돌아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을 때 일이다. 당시 대만 정부 서열 3위인 행정원장이 뒤로 돌아 엉덩이를 보이며(물론 옷은 입은 채로) “우리가 각자 가진 건 궁둥이 한 짝뿐인데….”라고 말하는 만화를 인터넷 밈(meme)으로 만들어 유포했는데, 밈 하단에는 마스크 재료는 대만산이며 화장지 재료는 남미산이라는 사실을 테이블로 정리하여 명시했으며, 이후 하루 이틀 만에 사재기 바람이 잠잠해졌다는 에피소드다. 이외에도 보건부를 대변하여 방역 수칙을 알리는 개(spokesdog) 만화를 활용하거나,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내에서는 개 두 마리, 야외에서는 세 마리 거리로 공지한다.

분명, 돌부처처럼 서서 심각하게 코로나 상황을 보고하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믿음직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에 있어 대만은 우리 이상의 성과를 냈다. 같은 민주적 대응 방식이지만 ‘코로나 해학’이 눈에 띈다. 우리 민족의 DNA에도 하회탈로 대표되는 해학의 전통이 있지 않은가. 인터넷 기술과 놀이 문화에 있어 우리 젊은이들이 결코 대만에 뒤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코로나19의 시름이 깊어가는 이 가을, 최소한 한 번 웃어보기라도 하자고 늘어놓은 얘기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