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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칸막이에 방치된 백신 유통…질병청은 단속권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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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1일 독감 백신의 상온 노출 사고가 터졌을 때 질병관리청이 경기도 김포시 신성약품 물류센터에 현장조사를 나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김포시 직원도 동행했다. 이유는 질병청에 조사 권한이 없는 데다 백신 유통을 잘 몰라서다. 질병청 관계자는 “우리는 조사권이 없다. 보건소는 백신을 잘 모른다. 백신 운송은 식약처 소관이다”고 말했다. 이어 백색 침전물 백신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안이 커지더니 결국 대형 사고가 났다. 16일 인천의 고교생(17)이 백신 접종 이틀 뒤 숨진 후 사망 신고가 59명(26일 집계)으로 급증했다.

20년 된 백신 관리시스템 난맥상 #법령 복지부, 단속은 지자체 권한 #복지부·식약처 관리 책임 미루기 #“유통사에 사실상 전 과정을 맡겨”

질병청의 다른 관계자는 “백신 유통의 최고 전문가는 식약처”라고 말한다. 지난달 21일 이후 독감 예방접종 사업 관련 공식 브리핑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나섰고, 식약처는 두 차례 배석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 때 백신의 안전성을 언급했다. 복지부와 식약처는 뒷전이고, 질병청이 왜 ‘총대’를 멨을까. 국가예방접종 사업의 주체라는 이유 때문이다.

20년 넘은 국가예방접종 사업에서 올해 유독 사고가 잇따르는 이유는 이 같은 ‘백신 행정의 난맥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호흡기내과)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는 “다들 책임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행세한다. 이번에 신성약품의 탈법 현장을 누군가 제보하지 않았으면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명돈(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장은 “지금의 백신 유통 시스템은 20년이 더 된 낡디낡은 것으로, 이게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질병청은 백신 유통의 ‘문외한’에 가깝다. 무료 접종 범위를 정하고, 예산을 따고, 조달청에 유통업체 입찰을 의뢰해 계약한다. 이후는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백신 수송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정도다.

백신과 관련한 상위 법률은 약사법이다. 복지부·식약처가 나눠서 담당한다. 의약품 도매질서 관리는 복지부다. 백신은 생물제제인데,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판매관리 규칙은 식약처 담당이다. 여기에 웬만한 백신 유통 관련 규정이 들어 있다. 도매상 허가는 지자체 소관이다. 식약처 고위 관계자는 “2013년 식약처로 분리할 때 이렇게 업무를 명확하게 나눴다. 당시 약품 유통도 복지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유통을 두고서 복지부와 식약처 말이 다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의약품 유통 품질관리 기준과 도매상의 준수사항은 복지부·식약처가 정하지만 도매상 관리감독, 행정처분은 지자체가 담당한다. 보건당국은 현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간 유통만이 문제가 아니다. 환자가 맞기 직전 품질도 의심스럽다. 오명돈 교수팀이 질병관리본부(질병청의 전신)의 용역을 받아 2018년 보건소, 병·의원의 수두 백신 냉장고 실태를 조사했더니 의료용을 쓰는 병·의원이 25%에 불과했다.

오명돈 교수는 “이번 기회에 생산에서 의료기관까지 모든 과정을 점검해 백신 유통 시스템을 현대화해야 한다. 사물인터넷(IoT)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각조각 행정 난맥상’의 정리도 필요하다. 정기석 교수는 “복지부·식약처·질병청이 칸막이를 쳐놓으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며 “보건부로 통합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강기윤 의원은 “질병청을 국가안전보건부로 승격시켜 보건소까지 지휘체계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민욱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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