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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재계 반박 보니…'기업 지배구조' 결국 관치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정책위원회 수석수 정책위 부의장 등 공정경제 3법 TF 소속 의원들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정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정책위원회 수석수 정책위 부의장 등 공정경제 3법 TF 소속 의원들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정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분석]공정위, 공정거래법 개정안 재계 반박에 재반박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규율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재계 반발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재계 논리를 반박하는 자료를 27일 내놨다. 공정위는 개정안 취지가 기업 경쟁력 강화와 지주회사 제도의 부작용 방지 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위 논리를 살펴보면, 규제 대상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어서 규제의 효과를 알 수 없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칫 공정위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지배구조 형태를 시장에 억지로 맞추려는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사람을 침대 크기에 맞게 자르고 늘리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①사익편취 규제 총수 지분 30→20%로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범위를 넓혔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회사를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으로 지정했지만, 이를 몽땅 20%로 일원화했다.

업계에선 개정법 발의 전에도 총수일가 지분율을 규제 선상 바로 아래(상장사 29.9%)로 줄여왔다. 사업 특성상 내부거래가 많은 기업 내 전산관리회사(SI 부문)의 총수 지분을 사모펀드 등에 매각하는 거래도 잦았다. 공정위는 이를 '규제 사각지대'라고 표현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년 출입기자단 정책소통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년 출입기자단 정책소통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림보게임' 막대 높이 낮추기식 규제"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고, 규제 범위를 넓히는 것은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 비판한다. 막대 밑으로 몸을 젖혀 지나가는 '림보게임'에서 막대 높이를 낮추는 방식처럼, 실익 없는 '기업 괴롭히기' 규제라는 지적이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대기업 집단은 본질적으로 내부거래가 많고, 이들 거래의 위법성은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다수결로 결정된다"며 "다수결에 따라 위법이 될 위험 요인 탓에 애당초 규제 선 이하로 지분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합법적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보행자가 위험 표지판을 돌아서 가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를 자꾸 제한하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②공정위 "지주사 지분율 늘려 지배 책임성 강화" 

공정위는 신규 지주회사의 지분율 요건 강화 규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재계는 지주회사가 계열사를 지배할 때의 의무 보유 지분율을 높인 개정안은 불필요한 비용만 늘린다고 반발한다. 연구·개발이나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할 돈을 지주사 지배력을 키우는 데 쓰는 건 낭비라는 지적이다. 마치 고3 수험생에게 시험 준비보다 근육량 키우는 데 용돈을 쓰라고 하는 격이란 설명이다.

이에 공정위는 "지주회사는 계열사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인데, 지배의 책임성을 담보하는 데 현행 지분율(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이 과연 충분한지는 문제"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지주사가 (지배력을 높이려고) 추가로 주식을 갖기 위해 쓴 돈은 어차피 한국 경제 울타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으로 볼 때 투자자금이 줄어든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 뉴스1

"지배력, 회계기준으로 판단…관치할 일 아냐" 

전문가들은 이 역시 시장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지주사에 주식을 파는 투자자 중에선 외국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국부 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 기업 입장에선 추가 지분을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지분을 대량으로 사들이려면, 블록딜(주가 영향을 줄이려고 대규모 지분을 장 마감 후 매매하는 거래) 방식으로 거래하게 된다. 이때 규제 탓에 급한 건 기업이지, 대량 지분 매도자가 아니다. 이 때문에 매도자들은 일종의 프리미엄을 붙여 비싸게 팔게 마련이란 분석이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모기업의 지배력은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시장에서 이미 판단하고 있고, 이에 맞춰 민간 자율로 지분 보유 규모를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정부가 일일이 개입할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③전속고발권 폐지, 고소 남발 기우? "경쟁사 악용 가능" 

공정위는 또 가격담합 등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재계 우려도 일축했다. 재계는 음해성 고소·고발이 남발될 것으로 우려한다. 공정위는 "담합 가담자 외에는 구체적으로 담합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쉽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소·고발은 모든 증거를 갖추고 하는 게 아니라, 검찰이 수사를 통해 증거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영업을 방해하려는 경쟁사 등이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 하나의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것이 정보교환 행위 자체를 담합으로 처벌하는 조항이다. 공정위는 정보교환을 금지한 멕시코 등의 사례도 거론한다. 일상적이거나 경쟁을 촉진하는 정보교환 행위는 규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보의 경계 판단이 모호하기 때문에 시장 내 자유로운 소통까지 차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거대 여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도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충분한 적응 기간을 줘야 한다는 게 재계의 제안이다. 이에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 시행은 공포 후 1년 이후가 될 것"이라며 "2~3년 정도 더 늦추는 방안은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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