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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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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지난주 여의도에서 가장 ‘핫’했던 단어는 ‘부하(部下)’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꺼낸 단어다.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무직 공무원이다. 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사법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된다”면서다.

여당에선 “장관이 총장의 친구냐”(김용민 의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연감’ 맨 앞에 장관이, 그다음에 총장 사진이 나온다는 논리(박주민 의원)도 나왔다. 수사·기소의 정치적 중립 목적에 따라 둔 장관과 총장이란 두 직제를 상급자와 하급자로 생각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지난 7일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열흘 뒤 넷플릭스로도 공개된 이 영화를 보면 의문이 다소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The Trial of the Chicago 7)’ 얘기다.

종속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사진 넷플릭스]

종속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사진 넷플릭스]

아직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영화의 한 장면만 소개한다. 영화의 배경은 1968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 전당대회 이후다. 당시 전당대회장 앞에서 평화적 반전(反戰) 시위를 벌이려던 시위대가 시카고 경찰과 주(州)방위군과 대치 끝에 폭력 시위대로 변질되고, 주동자로 지목된 7명에 대한 기소 여부가 쟁점이 된다. 이들의 성향은 기본적으로 반(反) 공화당(여당)이다.

린든 존슨(민주당) 행정부에서 리처드 닉슨(공화당)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1969년, 존 미첼 법무장관(Attorney General)이 33살의 리처드 슐츠 연방검사를 호출한다. 자신의 상관 토머스 포랜 검사장과 함께 온 슐츠 검사에게 미첼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포랜에게 가장 우수한 부하가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자네라고 하더군.”

그리곤 7명의 피의자를 연방법상 폭력 선동을 목적으로 모의한 죄를 적용해 기소하라고 지시한다. 슐츠 검사는 연방법상 모의죄는 판례가 없어 기소가 힘들다는 견해를 제시하지만, 이번엔 그의 상관 포랜 검사장이 “미개척지에 발을 내딛는 거지”라고 설득한다.

슐츠 검사가 “반체제·반사회적인 몽상가들이지만 기소 사유는 안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자 미첼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성공하면 내가 엄청 기뻐할 텐데?” 슐츠 검사는 마지막으로 폭동을 일으킨 주체가 모호하고, 경찰이 먼저 시작했단 증언이 나올 것이란 이유를 댔지만, 미첼 장관은 단호했다. “그럼 거짓임을 증명해서 승소해. 그게 자네의 역할이야.”

미국은 한국과 달리 검찰이 기소권만 가지지만, 그마저도 검사가 독립성을 잃고 법무장관 지시대로 따른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견제와 균형’을 말하면서 상관과 부하의 종속관계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주장하는 게 왜 아이러니인지 말이다.

하준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