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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이 한복 뺏어가려고 드릉드릉함?"…'한복 동북공정' 논란은 진짜일까

중앙일보

입력

“중국이 이제 한복까지 뺏어가려고 하네요.”

[ㅈㅂㅈㅇ] '한복 동북공정' 논란

지난달 1일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의 제목입니다. 작성자는 지난 8월 30일(현지시간) 열린 ‘2020 미스 홍콩 선발대회’에서 후보 뒤에서 춤추던 무용수들이 한복과 유사한 옷을 입고 나왔다며 “중국(전통 의상)은 치파오 아니던가요? 다른 나라 문화를 가져다가 배경으로 쓰는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어 “중국 드라마에서도 한복이 시녀 옷으로 많이 쓰인다”며 “동북공정에다가 한복이 하류 문화라는 심리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8월 30일(현지시간) 열린 '2020 미스홍콩 선발대회'에서 후보들 뒤로 한복과 유사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무용수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 [TVB 유튜브 캡처]

지난 8월 30일(현지시간) 열린 '2020 미스홍콩 선발대회'에서 후보들 뒤로 한복과 유사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무용수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 [TVB 유튜브 캡처]

이처럼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중국이 한복을 훔쳐 가려 한다’고 문제제기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인대회, 드라마, 패션쇼 등 각종 중국 콘텐트에 한복으로 보이는 옷과 장신구가 등장하는 일이 늘었는데, 이게 중국이 한복을 자신들의 전통 의복으로 만들려는 물밑작업이라는 주장입니다.

중국 드라마 '성화14년'에 등장한 망건과 갓. [드라마 스틸컷, 캡처]

중국 드라마 '성화14년'에 등장한 망건과 갓. [드라마 스틸컷, 캡처]

중국 드라마 '소주차만행'(좌)과 '삼생삼세 십리도화'(우)에 등장한 한복과 유사한 양식의 치마저고리. [각 드라마 캡처]

중국 드라마 '소주차만행'(좌)과 '삼생삼세 십리도화'(우)에 등장한 한복과 유사한 양식의 치마저고리. [각 드라마 캡처]

대표적인 예로, 올해 방영된 명나라 배경 드라마 ‘성화14년’(成化14年)에는 주인공이 갓과 망건을 쓰고 나와 논란이 됐습니다. 소수긴 하지만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도 “복장이 조선왕조나 고려시대 것과 비슷해 한국 드라마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죠. 또 다른 드라마 ‘소주차만행’(少主且慢行)에는 유독 시녀 역할 배우들만 한복과 유사한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등장해 ‘한복을 중국의 하위문화로 인식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이 더해졌습니다. 중국이 정말 한복을 뺏으려는 걸까요? 여러 복식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성화14'의 포스터를 두고 한 중국 네티즌은 ″왜 이렇게 한국적이냐″며 ″복장이 조선 왕조랑 고려시대 것과 비슷해 감독이 성룡이 아니었다면 계속 한국 드라마로 알았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웨이보 캡처]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성화14'의 포스터를 두고 한 중국 네티즌은 ″왜 이렇게 한국적이냐″며 ″복장이 조선 왕조랑 고려시대 것과 비슷해 감독이 성룡이 아니었다면 계속 한국 드라마로 알았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웨이보 캡처]

갓, 망건, 치마저고리…어떤 디자인이 우리 것?

형태에 차이가 있는 조선시대 양식 망건(좌)과 명나라 양식 망건(우). [넷플릭스 '킹덤', 중화TV '여의명비전' 스틸컷]

형태에 차이가 있는 조선시대 양식 망건(좌)과 명나라 양식 망건(우). [넷플릭스 '킹덤', 중화TV '여의명비전' 스틸컷]

먼저 논란이 된 사진 속 의상과 장신구가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 맞는지부터 물어봤습니다. 최근 중국 드라마와 패션쇼에서 자주 보이는 망건이 조선시대 양식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 간 이견이 없었습니다. 망건은 남자들이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걸 막고자 이마에 둘렀던 장식입니다. 명나라에도 망건이 있긴 했지만, 우리의 망건과는 형태가 확연히 달랐다고 합니다. 김소현 배화여대 패션산업학과 교수(전통의상 전공)는 “우리 망건은 이마에 두르는 방식인 데 비해, 중국 망건은 구멍 뚫린 모자와 비슷한 형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갓의 경우, 중국에 갓과 비슷한 모자가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모자 꼭대기가 평평하여 원통형을 이루고 말총을 소재로 하는 건 전형적인 조선 후기 갓의 특징이라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청명상하도’ 같은 송나라 때 그림에 갓과 비슷한 모양의 쓰개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된 사진 속) 갓은 굉장히 한국적인 것이며, 중국인들은 그런 형태의 갓을 많이 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복식사 전공 A 교수도 “우리 갓과 같은 양식이 중국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치마저고리는 어떨까요? 올해 미스홍콩 대회와 드라마 ‘소주차만행’에 등장한 치마저고리도 조선시대 양식에 가깝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치마를 먼저 입고 짧은 저고리를 치마 위로 오게 입는 건 18세기 조선에서 나타났던 방식이라고 합니다. 저고리 깃 위에 동정을 다는 것도 중국에선 잘 보이지 않던 스타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죠.

'한복 동북공정'일까

이처럼 논란이 된 갓, 망건, 치마저고리가 우리 전통 복식에 더 가깝다는 건 대다수 전문가들이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복식이 중국 콘텐트에 등장하는 현상을 ‘한복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렸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복식 전문가 B 교수는 “한국과 중국은 서로 문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기 때문에 지엽적인 것을 따지고 들어가면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만약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이런(한복을 중국 문화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때는 대응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 복식 디자인이 좋아 보여서 따라하는 정도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 의복은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달했다고 합니다. 우리 '관복'은 중국에서 들여온 게 많았고, 반대로 고려 복식은 중국 원나라에서 유행을 탔습니다. 때문에 원나라를 이은 명나라, 고려를 이은 조선 초기 때는 서로 의복이 매우 유사해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자연스러운 문화 전파로 보기엔 중국 문화로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김소현 교수는 “과거부터 한중이 서로 패션에 영향을 주고받긴 했지만, 고증에 맞지 않는 의복을 사극에 포함시키고, 주인공 뒤에 한복 입은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게 맞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치파오 대신 한푸 찾는 중국 

전문가들은 또 치파오 대신 ‘한푸’(漢服)를 중국의 전통 의상으로 내세우려는 흐름도 한복과 비슷한 옷이 중국 콘텐트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 전통 의상으로 널리 알려진 치파오는 사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때 의상입니다. 최근 중국에선 치파오 대신 현재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이 지배했던 시대의 복장, 즉 ‘한푸’를 복원하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명나라식 치마저고리(좌)와 청나라 복식인 치파오. [공자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명나라식 치마저고리(좌)와 청나라 복식인 치파오. [공자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문제는 한, 당, 송, 명나라 등 한족이 통일했던 여러 왕조의 복식을 전부 한푸의 범위에 넣어 자신들의 전통 복식으로 내세우려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 왕조마다 각양각색으로 존재했던 복식을 전부 ‘한푸’로 통칭하다 보니, 고려 양식이 반영된 명나라 복식, 더 나아가 우리 고유의 한복까지 은근슬쩍 한푸라고 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거죠. 김 교수는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중국 특유의 태도를 볼 때, 한복도 유야무야 중국 것처럼 돼버릴 수 있다”며“우리 것은 우리 것임을 분명히 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맥락이 숨어있는 ‘한복 동북공정’ 논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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