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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전화걸때마다 "유명희 지지"…그 뒤엔 盧 노하우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25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필리핀과 ‘자유무역협정 협상 조기성과 패키지 공동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 25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필리핀과 ‘자유무역협정 협상 조기성과 패키지 공동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8일(한국시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에 진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식이 전해지자 유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여건에서 선전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1995년 김철수 전 상공부 장관, 2013년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선 적이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최종 결선 진출자는 유 본부장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출마를 발표한 뒤 WTO 회원국 정상과 통화할 때마다 유 본부장 지지를 당부했다. 브라질·독일·러시아·호주·뉴질랜드 정상과의 통화에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하며 유 본부장을 “오랜 통상 분야 경력에 따른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만큼 WTO 발전 및 다자무역체제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유 본부장을 위한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다.

2006년 10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10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이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 본부장을 위한 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은 노무현 정부 때 경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을 유엔(UN) 사무총장으로 선출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첫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는 그때(반 전 총장이 후보로 결정된 때)부터 ‘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 대통령은 모든 순방외교에서 그의 지지를 부탁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지지 부탁을 위해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15개국을 방문했다. 또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주요국에 특사로 보내 지지를 부탁했다. 최광웅 전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이 쓴 『노무현의 사람들』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심지어 자국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낸 스리랑카 총리에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도와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8월 29일 부산시 벡스코에서 열린 제14차 국제노동기구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에 앞서 랏트나시리 위크라마나야카 스리랑카 총리와 접견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8월 29일 부산시 벡스코에서 열린 제14차 국제노동기구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에 앞서 랏트나시리 위크라마나야카 스리랑카 총리와 접견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그런 노력들이 효과를 봤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고위급 외교전이 아니었다”고 썼다. 대신 “반 총장의 당선이 가능했던 건 당시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했던 균형외교 정책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도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읽은 조사(弔詞)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 등에도 공을 들이는 균형외교 정책을 폈다. 중국은 반 전 총장을 지지했는데, 그 배경엔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에 대한 중국의 높은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제3세계 국가들의 지지도 같은 이유에서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또 “미국과도 이라크 파병 등 주요 현안에서 동맹 간 신뢰가 굳건했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고 썼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반기문은 확실한 친미주의자”라며 지지를 부탁한 사례를 소개한 적도 있다.

미국을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9월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뒤로 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보인다. [중앙포토]

미국을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9월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뒤로 미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보인다. [중앙포토]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WTO에 우리나라가 후보를 내기로 한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WTO 사무총장 입후보 얘기를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다는 것은 멋진 일 아니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에게도 ‘첫 한국인 WTO 사무총장’은 그런 의미일 수 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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