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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숑 습격한 푸들 무죄? "개가 가방 무는 경우와 같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갑자기 다른 집 푸들이 우리 집 비숑을 덮쳤어요. 그런데 사람이 물린 게 아니라서 처벌하긴 어렵다네요.” 

지난 3일 오후 4시 30분쯤. 경북의 한 애견 카페에서 10㎏ 넘는 푸들에게 목을 물어뜯긴 비숑 주인 김모(28)씨가 한 말이다. 피해를 본 개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3kg 이하 소형견이었다. 김 씨는 잠긴 목소리로 “병원에 갔더니 10㎝ 정도 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며 “가족처럼 키우던 강아지가 수술해야 한다고 하니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이번 주 웨딩 촬영도 취소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개물림 사고로 목 부위 살이 찢겨 붕대를 감고 있는 비숑의 모습. [독자 제공]

지난 3일 개물림 사고로 목 부위 살이 찢겨 붕대를 감고 있는 비숑의 모습. [독자 제공]

개가 사람을 무는 일뿐 아니라 개가 개를 무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에 접어들면서다. 지난달 25일 오후 10시쯤 용인시 기흥구의 한 거리에선 한 부부가 기르던 4살 된 포메라니안이 달려오던 진돗개에게 물려 죽는 사고를 당했다. 진돗개를 말리는 과정에서 이 부부도 손가락 등을 다쳤다.

개가 개를 물땐 속수무책

사람을 상대로 한 개물림 사고는 동물보호법 개정에 따라 보호받는 추세다. 하지만 개가 개를 무는 사고는 다르다. 현행법상 동물은 ‘재물’로 취급한다. 형법 366조(재물손괴 등)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재물손괴죄는 '과실'에 의한 손괴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가 개를 물었을 땐 가해 견주 측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

박주연 변호사(법무법인 방향)는 “개가 사람을 물면 과실치상이나 강화된 동물보호법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개가 개를 물었을 때는 다르다”며 “개도 생명체지만 법률상 특별한 지위를 갖지 않아 ‘개가 가방을 물었을 때’와 같은 경우로 간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사 처벌은 어렵다고 봐야 하지만 민사 소송은 가능하다”면서도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 법원에서 위자료를 인정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법적으로 개를 재물로 보고 있어 배상액 정도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 25일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대형견 로트와일러(동그라미)가 흰색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25일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에서 대형견 로트와일러(동그라미)가 흰색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7월 서울 은평구에서 맹견 로트와일러가 산책 중이던 소형견 스피츠를 물어 죽이는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도 처벌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경찰이 “혐의 입증이 어렵다”며 고소장을 낸 스피츠 견주를 돌려보내면서다. ‘로트와일러 개물림 사망 사건의 가해 견주가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원은 지난 8월 28일까지 6만7507명의 동의를 얻고 종료했다.

개의 개물림 사고에 대한 대책도 허술하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개물림 사고 방지를 위해 ‘2020~2024 동물복지종합계획’를 내놨다. 하지만 대상은 ‘사람’에 한정했다. 농식품부는 2022년부터 사람을 물거나 위협한 반려견은 공격성을 평가해 행동 교정이나 안락사를 명령할 수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추진하기로 했다.

“동물, 물건 아닌 생명체로 봐야” 

동물 인권단체에선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한국에서는 ‘반려견의 사회화 교육’에 대한 인식이 약해 개의 개물림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동물을 재물이 아닌 생명체로 바라볼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반려견에 대한 책임 의식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1990년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 별도 법률에 따라 보호된다’고 규정했다. 나아가 2002년 연방헌법에서도 국가는 자연적 생활기반과 동물을 보호한다’고 명시했다. 스위스도 1992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인정하고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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