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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빠 잃은 아들 ‘눈물편지’에 대통령은 행동으로 답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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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해에서 공무 수행 중에 실종된 뒤 북한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공무원 이모(47)씨의 고2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눈물의 손편지를 띄웠다. 이 편지에서 아들은 어린 동생(8), 엄마와 매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가족의 심정을 토로했다. 아들은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의 주인공이 대통령님의 자녀 혹은 손자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국가는 아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고2 아들, 정부 발표 못 믿겠다며 손편지 띄워 #대통령과 정부는 유족에게 책임있는 해명 하길

북한군의 총에 살해되고 불태워진 대한민국 공무원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슬픔을 위로하고 북한의 만행에 공분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일부 네티즌은 “월북자를 왜 구해야 하느냐” “월북자 가족은 숨어 살아야 한다”는 등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댓글은 달았다.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방부·통일부·해수부·해경 등은 하나같이 이씨의 월북으로 몰아가며 사건을 조기에 축소하려는 듯한 분위기다. 국방부와 해경은 연일 시신 수색을 한다면서도 북방한계선(NLL)보다 한참 아래만 맴돌아 보여주기식 ‘수색 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족은 편지와는 별도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앞으로 6일 북한의 만행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서도 발송했다. 이씨의 형은 “북한에 의해 희생된 미국인 청년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도 공조해 북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유족은 총살 전후 감청 녹음파일의 정보 공개도 국방부에 요청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사태 해결에 발 벗고 나서기는커녕 사실상 뒷짐 지고 있는 동안 공무원 피살 사건은 남북 현안을 넘어 국제 인권 사건으로 비화하고 있다. 자칫 인권 후진국으로 비칠까 우려된다.

9월 27일 안보관계장관 회의에서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청한 뒤 북한의 반응만 살펴온 대통령은 이씨 아들의 편지 관련 보도가 나오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경의 조사 및 수색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대통령의 말은 자칫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북한의 행태를 뻔히 아는 마당에 이 정도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진상 규명 등 사건 해결의 열쇠는 결국 문 대통령이 쥐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피살된 이씨의 아들은 “왜 아빠를 지켜주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 손편지에 썼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나라가 국민에게 해야 할 역할을 다 했는지, 지금은 다하고 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빠 잃은 아들의 절규에 책임감 있게 행동으로 응답할 때 대통령의 약속은 신뢰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