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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종인의 노동법 개정 제안에 당·청은 귀 기울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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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제(5일)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을 제안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경직된) 노동법은 성역이었다”며 “매우 후진적인 노동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코로나19 이후 (꼭 필요한) 산업구조 개편이 어렵다”고 했다.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진단이다.

노동개혁, 진보 정권 때 성사 가능성 커 #독일 슈뢰더식 개혁으로 미래 준비해야

김 위원장 지적대로 지나치게 경직된 노동시장은 한국 경제의 활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매년 꾸준한 상승 추세였지만 유독 노동시장 영역만큼은 역주행을 해오고 있다. 고용 및 해고 관행은 102위, 노사협력관계는 130위(2019년)로 평가 대상 141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기에 과거 굴뚝산업에 맞춰진 낡은 노동법 개혁은 더더욱 시급한 과제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미래를 위해 던진 화두에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에 섰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명 높은 국내 노동시장의 문제를 몰라서 외면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최대 우호 세력이자 표밭인 막강한 노동계의 눈치를 보느라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노동개혁에 소극적 입장을 취한 셈이다. 문제는 적당히 노동계 눈치를 보면서 입맛에 맞는 요구를 들어줘도 될 만큼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미래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당장 날로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와 치솟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번만큼은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

노동개혁은 어느 나라, 어느 진영을 막론하고 정권을 내놓을 용기가 필요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성공한 노동개혁은 진보 정부 때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반발하는 노동계를 설득하기엔 진보 정부가 더 수월한 측면이 있어서다. 독일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2003년 ‘하르츠법’이 대표적이다. 당시 독일 경제는 강력한 노동권 보호, 그리고 평균임금의 70%에 육박하는 연금과 실업수당 등 과도한 사회보장 비용 탓에 실업률이 치솟는 등 통일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진보 정당인 사민당 집권 시절 “정치적 자살”이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은 슈뢰더의 노동개혁 덕분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했다. 그 여파로 사민당은 정권을 빼앗겼지만 이를 발판으로 유럽 경제의 짐 취급을 받던 독일은 다시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라고 이런 개혁을 못 할 이유가 없다. “의석을 180석 가까이 차지했으면 나라 장래를 위해 노동법을 고치라”는 김 위원장 조언대로 정치공학적 꼼수 대신 미래를 위한 노동개혁에 나서 주기 바란다. 제대로 된 진보 정부라면 꼭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