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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하혈 사흘 뒤 출근 요구” 강원도청 뒤집은 女청경 고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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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혈로 수술하고 2주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3일 만에 출근하라더라”(강원도청 청원경찰 A씨)

“A씨가 법을 근거로 너무 많은 휴가를 쓰다 보니 이를 메꿔야 하는 청경들 사이에 알력이 생겼다. 회식 등 어울리려는 노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청경 반장 B씨)

강원도청 내에서 불거진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고용노동청 진정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피해를 신고한 인물은 지난해 공무직 청원경찰로 입사한 A씨(여). 그는 “약 9개월간 상관의 성희롱·폭언·악의적 소문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심신상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의 동료와 상사들은 “A씨가 사사건건 법을 근거로 기존 규칙과 문화를 무시하고 있어 조직 분위기가 크게 나빠졌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옛날엔 스타킹 한장에도 추위 불평 없었다고 지적”

지난 7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청원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다. 연합뉴스

지난 7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청원경찰들이 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다. 연합뉴스

사건의 발단은 지난 겨울이었다. A씨는 "도청 현관 데스크에서 민원인 안내 역할을 맡았는데, 건물이 노후한 데다 겨울에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근무지(강원도 춘천시) 특성상 실내가 실외로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며 "하루 8시간씩 한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1월엔 원인 불명의 하혈로 수술까지 받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A씨는 "히터 교체, 유리 칸막이 설치 등 수차례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며 "오히려 수술 후 2주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상관들은 3일 만에 '왜 출근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2주간 병가를 낸 이후 출근하자 현장 반장, 조장은 "진단서대로 다 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화를 냈고, A씨가 공무원 노조를 찾아가 문제 해결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지휘체계를 무시한다"며 질책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A씨는 "특히 조장 중 한 명은 '과거엔 안내양이 있었는데 짧은 치마에 스타킹 한장 신고도 춥다는 불평이 없었다'는 말을 동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며 "도청 청경 30여명 중 여성은 둘 뿐인데 최근엔 화장실도 대부분 남성인 동료 근무자의 허락을 받고 시간 체크까지 하라는 지시를 들어 성적 수치심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상급자는 그러나 “과거엔 근무 환경이 더 열악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여러 차례 충돌…“질책·폭언 잦아졌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관계자들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관계자들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이후에도 A씨는 여러 차례 조직 내 문화와 충돌했다. 그는 "최근엔 도청 감사관실에 반장이 시간외수당을 부당하게 수령했다는 익명 제보가 들어갔는데, 상급자들은 이 제보를 제가 했다고 악의적인 소문을 냈다"며 "특히 청경 대부분이 이 같은 소문을 믿고 있는 터라 9월 초엔 이에 항의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A씨는 “지난해 12월 강원지방경찰청으로 신입 교육을 다녀온 뒤 올해 4월 '청원경찰 경비기준액 고시'를 근거로 출장비 지급을 총무과에 요구했으나 끝내 이를 받지 못했다”며 “당시엔 상급자들이 ‘청경 총괄 부서 격인 총무과와 유대관계를 해치려 들면 어떡하느냐. 선배들도 못 받았다’며 끊임없이 심적 압박을 가해 정당한 권리도 주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이 같은 일이 잦아지자 상급자들이 근무 시 모자를 집어 던지거나 당직실로 호출해 불을 꺼놓고 질책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며 “이 때문에 소화 장애, 호흡곤란, 자궁질환을 겪는 등 심신이 크게 쇠약해졌다. ‘상관을 바보라고 불렀다’는 허위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근엔 도청의 지원을 받아 간 워크숍에 A씨를 빼고 가는 일도 발생했다고 한다.

“A씨 근무태도 불량에 장기휴가로 다른 청경 피해”

2018년 3월 충남 홍성군 홍북읍 당시 충남 도지사 관사에서 청원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다. 뉴스1

2018년 3월 충남 홍성군 홍북읍 당시 충남 도지사 관사에서 청원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다. 뉴스1

그러나 청경을 담당하는 총무과와 청경 내 A씨의 상급자는 “오히려 A씨로 인해 조직 분위기가 크게 나빠졌다”고 반박했다. 청경 내 최고참격 직원과 도청 총무과 직원은 “A씨가 추위로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히터를 교체해주고, 병가·연가 등 휴가도 쓰도록 하는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며 “A씨가 법·규정을 낱낱이 찾아와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라 당혹스럽지만, 규정에 있다 해서 휴가를 다 쓰면 A씨의 근무를 메꿔야 하는 동료들은 큰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청경 직원은 “A씨의 노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청경은 한겨울에도 바깥에서 24시간 근무를 서면서도 (A씨처럼) 제복 위에 두꺼운 목도리를 하는 경우가 없다”며 “특히 A씨가 조장과 반장을 제치고 총무과, 감사관실, 노조 등 여기저기 제보한 것도 공직사회 문화를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무 중에도 A씨가 휴대전화만 보고 있다거나 화장실 사용을 이유로 자리를 오래 비운다는 일부 청경의 불만도 들린다”며 “9월에도 병가 등을 이유로 8일밖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에 대해 “9월 근무를 못 했던 건 그간 폭언·오해 등으로 인한 심신쇠약으로 병원 진료가 잦았기 때문”이라며 “항상 상관에게 먼저 상의를 했지만 문제 해결이 안 됐다. 현재 가해자인 청경 5명을 상대로 고용노동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도청 관계자는 “이들과 A씨의 근무지를 분리하는 등 격리조치 했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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