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행정안전부 전 장관의 페이스북은 8월 29일로 멈춰있다. 차기 당대표를 뽑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날이다. 김 전 장관은 이낙연 당 대표에 39.4%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그는 그날 “‘새로운 김부겸’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김 전 장관이 이후 공개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제 나도 정치 인생을 리셋(재정비)할 때가 아니겠나. 당 안팎의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정치가 왜 국민과 마음과 왜 멀어졌는지 듣고 있다. 앞으로 정치를 계속한다면 어떤 메시지와 비전을 갖고 해야할 지 고민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차기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에게 호소할지 분명해져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단순히 정치를 오래 했으니까, 막말로 차례가 됐으니까 다음엔 뭐 도전하는 식으로 정치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침묵할 때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영호남을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
21대 총선과 당대표 선거 낙선으로 존재감이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여권의 차기 대권 주요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영남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라는 점이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여권 후보 중에 대구·경북(TK)에서 표를 20% 가까이 가져올 수 있는 후보가 김 전 장관 말고 또 있느냐. 이 점은 대선 본선으로 가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대선에서 영남 300만 표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선 “이 시대에 좋은 정당은 전국에서 골고루 사랑받는 전국정당”이라며 자신의 강점을 내세웠다.
김 전 장관은 경기 군포에서 16·17·18대 국회의원을 했다. 그는 3선의 기득권이 있는 경기 군포를 박차고 지역주의 벽을 깬다며 보수의 아성이었던 대구 수성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큰 사고 안 치면 군포에서 국회의원 한두 번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장관의 정치적 행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한다. 당 대표 선거에서 김 전 장관 후원회장을 맡았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며 영남으로 가지 않았나. 김 전 장관도 그런 행보를 걸었는데, 그게 기특해서 후원회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도 그를 ‘또 다른 바보 노무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낮은 지지율은 고민거리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정치 쪽에 있는 사람들은 김 전 장관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높게 평가하지만, 아직까진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지 않나. 인지도를 어떻게 높이느냐에 따라 다음 대권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교수도 “김 전 장관은 정치적 내공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상징화된 메시지가 없다. 그리고 TK에 집중하다보니 호남 중심의 민주당에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고 분석했다.
“오뚜기처럼 일어날 것”
김 전 장관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가 대권 주자로서 재기할 것으로 믿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김 전 장관을 도운 한 의원은 “전당대회 결과에 조금 실망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정기국회 이후엔 어떤 계기를 통해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오랜 정치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내공이 대단하다. 곧 오뚜기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평했다.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장관과 김영삼 정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오랜 친구다. 박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한 뒤에 “새로운 시대 정신을 갖고 부딪혀라. 대통령 후보로 나와라. 맨날 과거 시대에 연결되는 사람만 선거에 나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무덤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김 전 장관에게 재기의 발판이나 계기는 있을 것”이라며 “미래 세대와 합종연횡하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