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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생 리셋할 때" 김부겸의 페북은 8월29일에 멈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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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김 후보는 21.37%의 총득표율로 이낙연 후보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김 후보는 21.37%의 총득표율로 이낙연 후보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김부겸 행정안전부 전 장관의 페이스북은 8월 29일로 멈춰있다. 차기 당대표를 뽑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날이다. 김 전 장관은 이낙연 당 대표에 39.4%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그는 그날 “‘새로운 김부겸’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김 전 장관이 이후 공개적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제 나도 정치 인생을 리셋(재정비)할 때가 아니겠나. 당 안팎의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정치가 왜 국민과 마음과 왜 멀어졌는지 듣고 있다. 앞으로 정치를 계속한다면 어떤 메시지와 비전을 갖고 해야할 지 고민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차기 대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국민에게 호소할지 분명해져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단순히 정치를 오래 했으니까, 막말로 차례가 됐으니까 다음엔 뭐 도전하는 식으로 정치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침묵할 때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가 지난 8월 19일 오전 대전시 서구 탄방동 오페라웨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가 지난 8월 19일 오전 대전시 서구 탄방동 오페라웨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호남을 끌어안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

21대 총선과 당대표 선거 낙선으로 존재감이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여권의 차기 대권 주요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영남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라는 점이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여권 후보 중에 대구·경북(TK)에서 표를 20% 가까이 가져올 수 있는 후보가 김 전 장관 말고 또 있느냐. 이 점은 대선 본선으로 가면 엄청난 자산이 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대선에서 영남 300만 표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선 “이 시대에 좋은 정당은 전국에서 골고루 사랑받는 전국정당”이라며 자신의 강점을 내세웠다.

김 전 장관은 경기 군포에서 16·17·18대 국회의원을 했다. 그는 3선의 기득권이 있는 경기 군포를 박차고 지역주의 벽을 깬다며 보수의 아성이었던 대구 수성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큰 사고 안 치면 군포에서 국회의원 한두 번 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 말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진. [사진 김부겸 의원 페이스북]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진. [사진 김부겸 의원 페이스북]

정치권에선 김 전 장관의 정치적 행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한다. 당 대표 선거에서 김 전 장관 후원회장을 맡았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를 타파한다며 영남으로 가지 않았나. 김 전 장관도 그런 행보를 걸었는데, 그게 기특해서 후원회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도 그를 ‘또 다른 바보 노무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낮은 지지율은 고민거리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정치 쪽에 있는 사람들은 김 전 장관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높게 평가하지만, 아직까진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지 않나. 인지도를 어떻게 높이느냐에 따라 다음 대권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교수도 “김 전 장관은 정치적 내공도 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상징화된 메시지가 없다. 그리고 TK에 집중하다보니 호남 중심의 민주당에서 당내 기반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조달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뉴스1]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가 지난 8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조달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뉴스1]

“오뚜기처럼 일어날 것”

김 전 장관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가 대권 주자로서 재기할 것으로 믿고 있다. 당 대표 선거에서 김 전 장관을 도운 한 의원은 “전당대회 결과에 조금 실망한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정기국회 이후엔 어떤 계기를 통해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오랜 정치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내공이 대단하다. 곧 오뚜기처럼 일어날 것”이라고 평했다.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김 전 장관과 김영삼 정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오랜 친구다. 박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한 뒤에 “새로운 시대 정신을 갖고 부딪혀라. 대통령 후보로 나와라. 맨날 과거 시대에 연결되는 사람만 선거에 나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무덤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김 전 장관에게 재기의 발판이나 계기는 있을 것”이라며 “미래 세대와 합종연횡하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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