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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추천 책, 무관심하거나 기회로 삼거나…직장인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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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 오른쪽 사진은 '플라스틱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최태원 SK 회장. 오른쪽 사진은 '플라스틱 바다'의 한 장면. 중앙포토

SK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차장급 직원 A씨는 환경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바다(Plastic Ocean)'의 유튜브 주소를 본인 카카오톡 대화방에 저장해놨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 22일 SK 모든 구성원에게 보내는 e메일을 통해 추석 연휴 볼만한 다큐멘터리로 추천한 뒤다.

[기업딥톡36]CEO 추천 책과 영화 ①

최 회장은 e메일에서“우리는 이미 기업 경영의 새로운 원칙으로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를 축으로 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경영을 설정하고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다”며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SG에 대한 영감을 얻길 바란다”며 추천한 다큐멘터리가 ‘플라스틱 바다’다.

A 씨는 연휴 때 시간을 내 약 10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집중해서 보기로 했다. 2016년 나온 ‘플라스틱 바다’는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그의 추천 책.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그의 추천 책. 인스타그램 캡처

A 씨는 “회장님이 ESG를 강조하며 추천한 다큐멘터리고, 그 제목에서부터 어떤 내용일지 충분히 가늠된다”며 “그래도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서 최고경영자의 뜻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내 생각도 가다듬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감상문을 쓰라는 지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양 프로그램을 권한 것이어서 일을 더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회장님보다는 ‘난 이게 좋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직원 입장에서 더 마음 편하다”고 덧붙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책을 추천했다. 지난 7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추석 연휴 때 읽을 도서 구입”이라며 책 사진을 올렸는데, 직원들은 사실상 추천 도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 부회장이 읽기로 한 책은 『초격차 : 리더의 질문』(권오현), 『투자의 모험』(스티븐 슈워츠먼), 『빅체인지, 코로나19 이후 미래 시나리오』(최윤식) 3권이다.

부장급 B씨는 이 책들을 모두 사뒀다. B씨는 “회사의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관심사가 뭔지 궁금하고 신경쓰게 되는 게 당연하다”며 “젊은 나잇대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부장급 이상 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회장님 추천 영화ㆍ책’에 관심 갖지 않는 직원은 어떤 유형일까. KB금융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과장급 C씨는 “그런 추천 도서는 본부장급 이상 되는 '간부'분들이 읽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가운데). 사진 KB금융그룹

윤종규 KB금융 회장(가운데). 사진 KB금융그룹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여름 휴가철 『룬샷』(사피 바칼)을 추천했는데, C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이 책은 외면받던 아이디어를 발 빠르게 육성해 성장의 동력으로 만든 사례를 소개한다. C씨는 “내가 맡은 직무가 전통적으로 매뉴얼화 돼 있어서 CEO의 철학을 공유하면서까지 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관심도가 낮은 것 같다”며 “또 회사를 언제 옮길지 모른다는 생각도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주변에 승진 욕심이 큰 동료들 위주로 회장님 추천 책에 관심 있는 부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그로잉 업』(홍성태)을 추석 추천 도서로 꼽았다. 정몽규 HDC 그룹 회장은 『디즈니만이 하는 것』(로버트 앨런 아이거) 등 4권을 지난 여름 휴가철에 추천했다.

이처럼 CEO들의 교양물 추천은 ‘노골적이지 않은 경영 효율화 압박’ 으로 쓰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는 “영화ㆍ책을 통해 그 내용을 공유하면 향후 CEO가 어떤 지시를 했을 때 같은 철학을 바탕에 깔고 이해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빠른 업무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책 읽고 영화 보라는 건 추가 업무 지시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나부터도 중소기업 경영자에게도 추천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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