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폭식증은 마음의 병"…환자 자녀둔 부모모임 '나사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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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식사를 거부하는 거식증(拒食症)과 토하면서까지 먹어대는 폭식증(暴食症).

정반대의 증상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된 질환이다. 여기서 뿌리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다.피골(皮骨)이 상접하지만 여전히 뚱뚱하다고 생각한다.명백히 마음의 병이다.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다.사망률이 5%에 달해 정신질환 중 가장 위중하다.

'나사모'(나를 사랑하는 모임.전화 02-3452-9700)는 거식증과 폭식증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다. 18일 서울 양재동 백상 신경정신과 식이(食餌)장애 병동에 모여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기회를 가진 이들을 찾았다.

"고3인 희정이는 어려서부터 통통한 편이라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체중이 15㎏ 이상 빠졌는데도 더 살을 빼려고 했습니다. 급기야 생리가 중단됐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외출을 기피해 집에 갇혀지내고 있습니다(김정자씨.가명)."

"자식이지만 그저 짐승같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한동안 음식엔 손도 대지 않다가 먹을 땐 토하면서까지 게걸스럽게 먹어댑니다(박진수씨.가명)."

거식증과 폭식증은 대부분 과도한 다이어트에서 시작된다.환자들이 몸매에 관심이 많은 여성 일색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여기엔 그릇된 사회적 압력도 한 몫 한다.

백상 신경정신과 강희찬 공동 원장은 "TV 화면에 등장하는 날씬한 몸매의 모델과 연예인은 대부분 의학적으로 비정상"이라며 "청소년들에게 이들의 몸매가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기준은 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대개 20~25가 정상이다. 17.5 이하(예컨대 키 1백65㎝에 47.6㎏ 이하)면 식이 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문제는 1979년 미스코리아 당선자들의 평균 체질량지수가 18.4인데 비해 98년 17.0으로 내려간 예에서 보듯 나날이 피골이 상접한 몸매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

완벽주의자인 동시에 자존심이 부족하고 참을성이 강한(착한)이른바 '천사'들이 주로 거식증과 폭식증의 희생양이 된다.

가장 처음 겪는 고통은 치료를 거부하는 자녀를 병원으로 데려오는 것.

"곁에서 보기에도 위태로울 정도로 살이 빠졌는데 다이어트를 강행해 119 구급대원을 불러가면서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딸과 아버지가 원수가 됐지요(이원숙씨.가명)."

부모가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폭식증을 앓던 딸이 증세가 좋아져 안심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침대와 가방에 과자 등을 숨겨다니면서 먹었더군요(민희경씨.가명)."

전문가들은 이 경우 전문 병동으로의 입원 치료가 최선의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진이 직접 음식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있고 상담 등 정신치료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수 있기 때문.

이 병원 박선자 공동 원장은 "6개월 이내 20% 이상 체중이 급격히 빠지거나 5년 이상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하는 경우라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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