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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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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진영논리와 사사성에 의해 파괴되었던 인간성과 공공성을 복원하려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끝날 시점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람이 먼저인 나라’는 희망과 절망의 어디에 가까울까? 공공성은 바르게 복원되고, 고질병인 진영대결은 타파되어 있을까?

출산·자살·비정규직·산재사망 #중요 인간지표들 모두 완전 거꾸로 #‘사람이 꼴찌인 나라’ 달려가는 중 #공정과 정의를 향해 다시 출발해야

1년 내내 두 법무장관을 둘러싼 적폐와 불법, 반칙과 특권, 온정과 특혜에 대한 저열한 공방과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주요 책임자들을 포함해 누구도 정부 종료 시점의 국가와 국민의 상태에 대한 고뇌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급한 말 대결과 권력 놀음을 넘는 곳에는, 중대한 인간 문제의 공식적 지표들이 문재인 정부의 뼈아픈 중간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객관적 통계에 따를 때 주요 지표들은 전부 거꾸로 가고 있다.

객관적 지표들에서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체험하고 있다. 출산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0점대에 접어들었다. 한국 역사가 아니라 근대 인류의 역사상 처음이다. 2018년 0.98로 최초로 0점대를 기록하더니, 19년에는 0.92로 떨어졌다. 분기별로는 더 최악이다. 집권 직후인 17년 4/4분기에 0.94로 첫 0점대에 진입하더니, 18년 4/4분기에 0.89, 그리고 20년 2/4분기 현재는 0.84까지 떨어졌다. 집권 이후 1점대 출산율을 기록한 적은 17년 3/4분기와 18년 1/4분기 두 번뿐이다.

그러나 저출산 예산은 어떤 정부보다 천문학적인 규모를 투입하고 있다. (18년 26조3189억원. 19년 37조1297억원. 20년 40조1906억원) 앞 정부들의 저출산 예산은 문재인 정부보다 비교할 수 없이 적다. 그런데도 지금 0점대다. 출산 예산과 출산율은 완전 반비례다.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고 있기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현대 인류사에서 한국보다 더 오래 출산율 꼴찌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 자살률도 같아서 한국보다 더 오래 1등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린 지금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아니라, 완전 반대로 가고 있다. 인구 소멸은 곧 국가 소멸이다.

자살 규모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감소에서 증가로 ‘처음으로’ 역전되었다. 사람이 꼴찌인 사회의 참상이다. 2011년 1만5906명을 정점으로 17년 1만2463명까지 줄었던 자살자는 18년 1만3670명, 19년 1만3799명으로 다시 증가하였다. 자살 사망률도 26.9%로 0.9%나 늘었다. 최장 세계 1위는 계속된다. 하루 37.8명이 자살하는 나라다.

산업재해사망도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3년 2923명(최고)에서 16년 1777명(최저)까지 낮아졌던 숫자는 17년에서 20년까지는 각각 1957명, 2142명, 2020명으로 ‘다시’ 증가하였다. 사람이 먼저인 정부의 실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 번도 2000명을 넘은 적이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2016년 615만6천명(정규직 대비 32.0%)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7년 657만8천명(32.9%), 18년 661만4천명(33.0%)에서 19년에는 748만1천명(36.4%)으로 급증하였다. 노무현 시기의 37.0%(2004)와 36.6%(05)를 빼고는 이명박·박근혜 시기 동안은 한 번도 35%를 넘은 적이 없었다. 19년의 경우 정부 설명대로 기준의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절대 숫자 자체가 큰 증가였다. 하여 남성은 29.4%, 여성은 45%가 비정규직이다.

지방 균형발전은 완전 반대다.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폭등으로 지방은 붕괴를 넘어 괴멸과 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방의 소멸 고위험 지역(시군구)은 5개(16년)에서 11개(18년)로 두 배 넘게 증가하였다. 실제로 부동산은 완전 지옥 수준으로 폭등하였다. 서울의 경우 소득과 구매 기간을 비교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부동산 절대 불평등은 청년들의 거의 모든 희망을 죽이고 있다.

불행하게도 공식통계들을 따를 때 코로나19 이전까지의 중간평가에서 전보다 나아진 것이 있는가? 없다. 분명 코로나 이전이다. 그렇다면 임기 말에는 과연 나아질까? 인간 문제 대신 지금처럼 권력 놀음을 지속해서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객관적 인간 지표들의 중간 성적표는 임기 종료 시 나라 상태에 대해 더욱 큰 두려움을 자아내게 한다.

86세대의 민주화투쟁 ‘업적’과 반인간화·반생명화 ‘범죄’ 사이에 무엇이 더 클지는 아직 평가가 이르다. 그러나 친(親)민주적-반(反)공화적 권력독임을 지속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전자가 클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후자가 더 클 것이다. 진영으로 나라를 죽이는 것이다.

주권자로서 우리는 거꾸로 가는 이 참혹한 객관적 지표들에 대한 대통령과 책임자들의 진솔한 대답을 듣고 싶다.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진보기득세력과 86세대에게서 더 강고하게 지속되는 특권과 반칙, 세습과 특혜의 적폐가 청년들과 국민들의 희망을 앗아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출산·자살·부동산·비정규직·균형발전·산업재해의 영역들은 특별한 저항세력도 없었다. 정부 스스로 실패한 것이다.

지금 공정과 정의는 길을 잃었다. 다시 출발하자. 사람을 먼저 보라.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