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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윤영찬의 “카카오 들어오라”가 위험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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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우리는 신문 기사에 신경 안 씁니다.” 정부에서 언론 일을 하는 인사가 얼마 전 필자와 대화 도중 내뱉은 말인데, 그땐 그 뜻을 미처 몰랐다. 윤영찬의 “카카오 들어오라 하세요” 논란을 접하면서 의문이 풀렸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영찬은 뉴스를 만드는 언론사 대신 언론 뉴스를 공급받아 핸드폰·컴퓨터에 띄우는 포털을 호출했다. 뉴스가 맘에 안 들면 개별 언론사를 상대하지 않고 네이버·다음 카카오 등 포털과 직거래를 하겠다는 정권의 언론정책을 실토한 셈이다. 이 장면에서 뉴스가 집결하는 포털에 간섭해 뉴스와 여론을 통제하고 싶은 위험한 욕망을 엿보았다.

여론 이끌던 전통 미디어 시대 가고 #‘미디어 권력’ 부상한 포털에 간섭해 #뉴스 통제하는 권력의 잘못된 욕망 #언론이 망가지면 민주주의도 없어

한국 언론이 처한 참담한 현실부터 고백하자. 국민은 더는 신문·방송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여론을 주도하던 레거시(legacy) 미디어의 시대는 저물고, ‘포털 천하’다. 우리나라 포털은 뉴스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오직 뉴스 유통만 한다. 그런데도 2019년 현재 20세 이상 국민 4명 중 3명 가까이(72%)가 포털에서 뉴스를 이용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수용자 조사’) TV는 젊은 층이 외면하는 50~60대의 전유물이 됐다. 종이신문은 일부(12%) 지식층만 소화하는 ‘사치품’으로 변했다. 국민 절대다수는 주로 신문사들이 만든 뉴스를 종이가 아닌 포털을 통해 읽는다는 얘기다.

이제 포털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는 미디어 권력이다. 5200개의 신문, 인터넷 매체, 방송사, 통신사를 가릴 것 없이 포털에 종속된 을(乙)의 신세로 전락했다. 언론사가 뉴스라는 상품을 생산해 포털에 납품하고, 이렇게 모인 뉴스들을 포털의 의도대로 배치하면 시민이 접하는 생태계가 굳어졌다.

국민은 포털에 올라온 모든 뉴스를 자유롭게 서핑하며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줄 착각한다. 종이신문을 펼쳐 놓고 스스로 뉴스를 골라 읽는 방식으로 오해한다. 실제로는 컴퓨터나 핸드폰의 제한된 화면에 노출된 몇몇 뉴스들을 클릭할 뿐이다. 인공지능(AI)이든 AI를 설계하는 사람이든 눈에 띄도록 배열해준 특정 뉴스 중에서 ‘선택당하는’ 구조다. 포털이 걸러낸 뒤 공급하는 편향된 정보의 거품 속에 이용자들의 인식과 사고가 갇히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이 발생한다. (엘리 프레이저 『생각 조종자들』) 포털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여론’이 생성되는 구조다.

‘괴벨스의 라디오’가 그랬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1930~40년대 대중 선동의 도구로 당시의 뉴미디어였던 라디오에 주목했다. ‘폴크스앰펭어’(국민라디오)를 전 국민에게 보급했다. “언론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돼야 한다”며 여론을 조작했고,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광기(狂氣)로 몰아가는 데는 라디오의 역할이 컸다. 그 라디오에 비견될 만큼 한국의 포털은 막강한 미디어가 됐다.

그런 포털의 위세도 정치권력 앞에선 초라한 ‘을’일 뿐이다. 포털은 뉴스 검색뿐 아니라 복덕방에서 쇼핑·금융·보험·여행·엔터테인먼트·게임 등등 오만 가지 사업을 하는 문어발식 기업이다. 사업의 생살여탈권을 쥔 정치권력에 나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포털 장악에 유혹을 느낄만한 환경이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내고 포털을 담당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의원 윤영찬의 “들어오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언론 지형을 바꾸려는 포털 길들이기 시도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그래서 합리적이다.

이 정권의 일상어가 된 내로남불, 억지와 궤변은 막연한 과대망상이 절대 아니다. ‘안중근 의사에 견줄만한 영웅’ 추미애 아들, ‘토착 왜구의 표적’ 윤미향, ‘검찰 개혁을 방해하는 적폐세력의 희생양’ 조국…. 이런 황당한 프레임을 짜는 저들은 여론을 내 편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과 자신감에 차 있다.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지상파 TV는 말할 것도 없고, 라디오와 신문은 진영에 점령당했다. 편에 따라 사실과 판단이 달라진다. 권력에 불리하다 싶으면 보수 언론을 탓하고, 음모론을 퍼뜨려 진실을 호도한다. 기자 선발 논술시험에서 ‘박원순 성추행 피해호소자’ 여부로 사상 검증을 하는 MBC가 중립적 ‘공영방송’을 자처한다. 맹목적으로 정권을 받쳐주는 ‘빠 세력’은 견고하다. 여기에 포털까지 품어 구축하려는 ‘3각 카르텔’이 저들의 믿는 구석일 수 있다.

“뉴스는 세상을 향해 나 있는 창(窓)”이다. 지금 한국에서 포털은 세상의 창이다. 정치와 결탁한 포털은 정파적 이데올로기 도구로 변질한다. 마땅히 알려야 할 사실에 침묵하고, 교묘한 편집으로 팩트를 부풀리거나 축소하려는 욕심에 빠진다. 뒤틀린 창틀(프레임)을 통해 보면 세상도 뒤틀려 있다. 악마와 천사가 뒤바뀌고,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쓴 허구의 세상이 펼쳐질까 두렵다.

“들어오라” 논란을 그냥 덮어선 곤란하다. 공정성의 저널리즘 본질을 흔드는 심각한 사건이다.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포털의 뉴스 편집 알고리즘이 정치적으로 놀아나지 않도록 감시할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이미 포털에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운 탓인지 국민은 무심하다. 언론이 망가지면 민주주의도 없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