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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다 망한다"···1년전 박용만 '만세' 외친 P2P법의 배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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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통과 당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만세!”를 외쳤던 일명 ‘P2P(개인 간 거래)법’이 1년 만에 업계의 족쇄가 되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깐깐한 규제 때문에 우량 업체들도 “이러다가 생존이 위험하다”며 아우성이다.

이땐 다 같이 웃었다. 지난해 9월 열린 P2P법 정책토론회 참석자들. 맨 왼쪽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가장 오른쪽은 김성준 렌딧 대표. 연합뉴스

이땐 다 같이 웃었다. 지난해 9월 열린 P2P법 정책토론회 참석자들. 맨 왼쪽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가장 오른쪽은 김성준 렌딧 대표. 연합뉴스

‘P2P법’으로 불리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은 지난 해 8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2017년 7월 발의 후 2년 1개월 만이었다. 그때만 해도 P2P법은 규제혁신의 대표사례로 통했다. 당시 수차례 국회를 찾아 법 통과를 촉구했던 박용만 회장은 자신의 SNS에 “P2P법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는 말을 듣고 ‘만세’를 외쳤다. 너무 격해져서 눈물까지 난다”는 감회를 밝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저도 만세! 만세! 만세!”라고 말하며 환영했다.

해당 법안은 같은 해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지난 달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P2P업계에선 ‘옥석 가리기’를 통해 건전한 회사는 보다 쉽게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피플펀드 '은행 연계 대출' 중단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P2P업계에서는 “우리가 너무 현실을 몰랐다”는 한탄이 나온다. 당초 예상과 달리 P2P법이 높은 진입장벽과 엄격한 잣대로 오히려 업계의 숨통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주요 상품 운영마저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 22일 P2P업계에 따르면 개인신용대출 잔액 기준 업계 1위 업체인 피플펀드는 주력 상품인 은행 연계형 신용대출 서비스를 종료한다.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 통합형 P2P 대출 방식은 P2P법과 대출 가이드라인 상 운영이 불가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다. 법상 P2P업체로 등록할 경우 대출 계약 등 핵심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없다는 이유다.

앞서 P2P업체들은 직접 대출을 내줄 법적 근거가 없어 대부분 대부업체에 대출 업무를 위탁해왔다. 반면 피플펀드는 1금융권인 전북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대출 계약‧실행 등 주요업무를 전북은행에 위탁해왔다. 이 때문에 “다른 업체들과 달리 ▶허위서류 적발이 용이하고 ▶안전한 자금관리가 가능한 데다 ▶1금융권 연계 대출이어서 신용등급 관리가 쉽다”는 점을 내세워 투자자를 대거 모집했다. 피플펀드 측은 “7월 기준 개인신용대출 잔액이 1000억원을 돌파하며 58%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P2P 대출현황. 중앙일보

P2P 대출현황. 중앙일보

그러나 당국의 이번 유권해석으로 이 같은 사업모델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피플펀드는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은행통합형 모델은 온투업자 등록 전까지만 운영될 것”이라며 “라이센스 기반의 ‘피플펀드론 2.0’을 새롭게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플펀드 관계자는 “당국 지침이니 따르긴 해야겠지만 이미 해외에서도 안전함이 입증된 방식의 대출을 하지 말라는 건 아쉽다”며 “당국과 계속 협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대출 한도 500만원으로 줄어 

개인신용대출뿐 아니라 부동산담보대출 시장도 빡빡한 규제에 직면했다. 당초 예상보다 개인 및 기관 투자자의 투자한도가 대폭 축소되면서다. P2P법 및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 개인투자자는 업체당 10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는데, 부동산 분야에서는 업체당 5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여러 업체에 나눠서 투자하더라도 총 1000만원까지만 가능하다. 입법예고 당시 개인 투자자가 업체당 최대 3000만원, 부동산 분야 10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축소된 한도다.

깐깐한 P2P법에 업계는 아우성이다. 셔터스톡

깐깐한 P2P법에 업계는 아우성이다. 셔터스톡

P2P 업계에선 “1인당 500만원씩 모아서 어떻게 투자를 진행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한 건 당 많은 투자금을 유치해야하는 부동산투자의 특성상 같은 상품이라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자를 모아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한 P2P업체 관계자는 “기존에 1000만원씩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액수가 너무 적어서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며 “그간 연체율 폭등이나 부실채권 사고 등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건전한 업체들도 몸집을 키우기는커녕 생존의 기로에 섰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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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P2P업계에서 잇따라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금융당국이 고삐를 더 바짝 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전체 P2P업체 237곳 중 146곳이 금융당국이 요청한 회계법인 감사보고서조차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다만 업계에선 “규제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업체는 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 P2P업체 대표는 “지금 규제대로 영업했을 때 과연 P2P업체들이 영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2P법이 시행된다고 지금보다 더 상황이 좋아질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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